3월 7일 토요일

마가복음 3장 20-35절

20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31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다. 누구든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고 용서하는 삶, 불의에 맞서 저항하는 삶을 통해서만 진정한 가족이 태어난다. 인간의 힘만으로 버티면서 맞춰주며 견디는 삶은 가족이 아니다.

3월 7일 토요일”에 대한 3개의 생각

  • 목사님
    29절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하는자라는 대신에, 왜 성령님에 대해서 이 시점에 언급 하셨을까요?
    성령님은 한참뒤 사도행전 시대에 오신것으로 알고 있는데 …

    • 이 시대에 이미 ‘성령’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유대인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율법에 대해 박식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더더욱 잘 알고 있었지요. ‘하나님’이라는 명칭과는 다른 ‘하나님의 영’의 의미를 말이지요. 이미 이사야 선지자도 ‘성령’에 관한 예언을 했으니까요.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성령에 대한 모독’은 그들 바라새인들에게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단순한 ‘존재’에 대한 모독과 ‘존재의 일함과 그 성격, 혹은 존재를 존재답게 하는 그 무엇인가’에 대한 모독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1. 성령님은 태초부터 역사하시는 자의 임무를 하고 계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임한 성령님은 말씀을 기초로 하는 교회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도움의 힘이 필요하기에 이 땅에 편만하게 내려오신 것입니다.

      2.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영원한 죄가 된다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모독’한다라는 것과는 달리 회개할 의지를 떠난 버림받은 아주 심각한 죄를 의미합니다. 주님께로 돌아올 수 없는 영의 상태를 말하지요.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의 시각으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3.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인간중심의 판단을 하는 것을 엄히 경고하는 것으로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가장 좋은 적용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답이 충분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귀한 질문에 감사을 드립니다.

  •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저는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성령에 관한 이해가 없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 시대엔 삼위 일체를 이해 못했을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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