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토요일

사도행전 1장 7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것을 많이 주셨다.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문화를 창조해 내는 창조성을 주셨고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도 주셨다.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의 베푸심을 증거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있다. 바로 순종의 양심이다. 서로 양보하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삼위일체적 성품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멋있는 분인지 아는가.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극한을 주셨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결과도 미리 알려 주심은 순종의 양심을 지켜줄 것을 원하셨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힘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대적하였다. 하나님을 판단한다는 것은 그분을 평가절하하는 적극적 의미가 아니라, 경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 어느 성도가 감히 하나님을 무시하겠는가. 하지만 그분의 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분의 말씀과 친밀히 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시여기는 판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무시와 경시는, 선을 더욱 넘어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 관심을 지나치게 갖는 것이다. 이것 또한 얼마나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인가.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것, 귀에 쏙쏙 들어오고, 남들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다면 영적으로 흥분이 되는 것 같은 신비로움… 이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하시기 직전에 던졌던 질문을 기억하자. 당신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얼마나 충성스럽고 헌신적으로 들리는 질문인가. 하지만 주님께서는 딱 잘라 말하신다. 너희 알 바 아니다. 

진정한 순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루 하루 살자. 

1월 23일 토요일”에 대한 4개의 생각

  • 요즘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기독교 적인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 드라마에서는 사람들이 왜 착하게 살아야하는지 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 철학적으로 의논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자꾸만 계산하게 되고 나의 만족과 이익이 희생보다 더 커 억누릅니다. 그냥 착하게 살아야 하니까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닌 주님을 사랑하기에 또 그분을 닮고 싶기에 그리고 cheerfully giving 할 수 있는 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맞는 목적이 있으면 그 길을 가는 것이 좀 덜 힘이 듭니다. 힘들때마다 내가 하고자하는 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을 다시 한 번 제 자신에게 remind합니다.

  • 또 덧붙이자면.. 목사님이 전에 해주신 말씀이 참 도움과 위로가 됩니다. 나누는 것도 연습해야 된다는 그 말,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즐겁지는 않지만 정말 하나님 안에서 즐거히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것이 아님 전부 다 하나님의 것임을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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