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토요일

 

교만에 관한 글 (스캇 허바드)을 4일 동안 연재해 나눕니다. 

 

그리스도인은 ‘미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다.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 9:3). 이렇게 쉽사리 단정하는 전도자의 판단이 혹 의심스럽다면, 특별히 한 가지 죄를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러면 솔로몬이 옳았다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죄란 바로 ‘교만’이다.

우리 모두는 흙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이 땅에서 스스로를 과시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 노골적으로든 교묘하게든 그러한 자세를 드러내며 살고자 한다. 마치 우리의 체력은 끄떡없고, 지식도 부족하지 않으며, 숨도 전혀 차오르지 않는 것처럼 인생을 뽐내며 활보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호흡을 주신다는 사실도 잊은 채 말이다. 그러니 ‘미친 마음’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사악하고 비정상적인 마음이 아니라 정결하고 순수한 마음을 얻게 되었다(겔 36:25-27).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미친 마음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용서받을 때 교만한 자아가 꺾여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지배할 수 없게 되긴 했지만,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은 여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려 준비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친 마음을 지닌 몸을 일으켜 기상하고 노동하고 이야기하고 활동하고 잠을 자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사도 바울의 도움으로 내 자신의 교만과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그가 교만으로 표현되는 미친 마음과 겸손으로 드러나는 행복하고 온전한 정신이 어떻게 다른지를 반복해서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1. 인간의 교만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바울은 인간의 교만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세대의 통치자들”에는 헤롯이나 빌라도만이 아니라, 바울이 “지혜 있는 자”나 “선비” 또는 “이 세대의 변론가”라고 부른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다 포함된다(고전 1:20). 간단히 말해, 교만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복음의 메시지를 듣게 되면, 그분을 곧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한다.

만일 교만이 무엇인지를 더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교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헤아려 보면 된다. 일단 우리 안에서 교만이 자라나면, 서슴없이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 꼭 손으로 죽이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살해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마 5:21-22). 이처럼 자기 안에 교만을 키우며 즐거워하는 사람은 가인을 따라 들로 나가며(창 4:8), 이세벨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뿐 아니라(왕상 21:5-14), 헤롯 왕의 잔치에도 참여하는 자이다(막 6:25-27).

교만이 막 싹트기 시작할 때는 그리 해로워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숨겨진 욕망이나 혹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생각을 소셜 미디어의 사진이나 글을 통해 얼핏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교만이라는 짐승이 자라나면 영광의 주님을 대면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바울은 지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청교도의 기도를 그저 무뚝뚝한 태도로 묵상할 수가 없다.

내 안에 높아진 모든 생각을 무너뜨리소서

이 교만을 부수어 사방으로 흩으소서

내 마음에 달라붙은 자기 의의 찌꺼기를 다 제거하소서

그리고 내 속에 회개의 눈물이 샘솟게 하소서

그렇게 나를 찢고 다시 싸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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