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주일

 

2. 교만은 십자가 앞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고전 1:22-23).

교만한 사람들이 모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말았지만, 그 사건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는 일이 되었다(행 4:28).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 가운데 교만은 그리스도를 못 박게 만들었지만, 그리스도가 못 박히심으로써 교만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십자가 앞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거친 표면과 거기 박혀 있는 차가운 못을 만져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고백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이러한 십자가 사건을 망각하거나 왜곡할 때 교만이 자기 안에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골고다의 공기를 들이마실 때만 자기 속에 있는 교만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십자가 앞에서는 왜 교만이 살아남을 수 없을까? 첫째로,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원인이 우리의 교만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다시 말해,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해악한 입술과 마음속에 감추어진 욕망, 그리고 자신만만한 태도와 거만한 눈빛을 깨닫게 된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리스도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보려면, 그 앞에서 우리가 행한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둘째로, 십자가는 우리 입술에 진정한 자랑을 심어 줌으로써 교만을 내세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랑을 제거한다기보다 이제까지 우리 자신을 추구하던 자랑이 비로소 그분을 향하도록 방향을 바꾸신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이처럼 십자가는 죄 가운데 자랑하던 우리로 하여금 사죄의 은혜를 누리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역사하던 사탄의 세력을 멸하여 우리가 받아야 했던 영원한 사망과 하나님의 진노를 철회하고 마침내는 우리에게 의를 부여함으로써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준다. 이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호흡하며 온전한 정신으로 그분을 찬양하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할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우리에게는 그분을 자랑해야 할 이유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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