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수요일

회개에 관한 글 (샘 알베리) 4일 동안 연재해 나눕니다. 

 

거의 매일 뉴스에서 보는 것이 있다. 

 

공인 한 사람이 많은 이들의 윤리 기준을 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그러고는 고통받은 이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유감 성명을 발표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공적인 신용을 계속 유지하곤 한다. 나는 이런 류의 태도를 “미안, 그런데 별로 안 미안해” 식의 뉘우침 없는 사과(non-apology apology) 또는 모조 사죄(faux-pology)라 부르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한 일로 인해 분노했을 사람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합니다” 또는 “내가 실수를 했네요”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회개하는 것 같은 면은 있지만 이는 구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 태도는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우리가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우리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불만을 표하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반응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도 그렇게 대할 수 있다. 성경을 묵상해보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배우게 된다. 예수님도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에 대한 우리의 가장 합당한 태도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막 1:15)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뉘우침 없는 사과가 때로 사람들에게는 먹혀드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도 그럴까?

 

유감을 표명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마음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는 사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흉내만 낼 뿐이어서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유감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깊은 애통을 동반한다. 뉘우침 없는 사과는 사람들과 관련된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다윗왕이 좋은 예다. 그는 밧세바와 동침하는 큰 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밧세바의 남편까지 죽게 하는 죄를 저지른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뉘우침 없는 사과 뒤에 숨고자 한다면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했던 것과 반대로 하면 되는데, 필자는 네 가지 정도의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죄를 죄라고 부르지 말라

 

다윗은 그가 죄를 범했음을 인정한다. 최선의 것이 아니었다거나 불완전했다고 얼버무리지 않았다. 윤리의 기준선은 엄연히 실재한다. 다윗은 자기가 그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사탕발림 같은 말이 아니다. “실수”였다거나 잠깐 “넘어진 것”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은 “악”이다(4절). 다윗은 “죄가 범하여졌습니다”라거나 “범죄가 발생했습니다”와 같은 애매한 수동적 표현을 하지 않았다. 다윗은 회피하지도 않고 빠져나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가 스스로 행한 일이었고 그의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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