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글 (제레미 트리트) 나눕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가르치신 내용 중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일까요?” 그 설교자는 이 주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답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기독교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매주 교회에서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주제,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정답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 마음에 찔림을 느끼던 그 몇 초 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자신만만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중 첫째 주제는” 하고 운을 뗀 설교자가 다음과 같이 이어 말했을 때, 나는 의자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다.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뭐라고? 하나님 나라? 십자가는?’ 그 순간, 내게 있던 확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이내 위기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관해 그렇게 많이 가르치셨다면, 왜 나의 신학과 교회 생활, 또 크리스천의 정체성에 대한 나의 인식 안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조금도 없는 것일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두 주제인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가 왜 크리스천의 신앙과 삶 속에서 그렇게도 분리되어 있는지에 대한 나의 탐구는 그날 시작되었다.

하나님 나라인가 십자가인가

많은 크리스천들은 십자가에만 매달리거나 하나님 나라만 강조함으로써 균형을 상실한다. 성경의 두 주제들이 양극화되자 이에 대한 접근법 역시 갈라졌다. 다시 말해, 어떤 이들은 죄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십자가 중심 신학을 주장하고, 또 다른 이들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실천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교회는 중요한 성경의 주제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20세기에 발현한 사회복음운동(social gospel movement)은 하나님 나라에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십자가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는 “진노하지 않는 하나님이 죄 없는 인간들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심판 없는 나라 안으로 인도하셨다”라는 정확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은 십자가의 중심성을 다시금 강조하며 야심 찬 반격에 나섰지만, 하나님 나라를 오로지 내세와 관련된 개념으로 축소시키거나 그 개념 자체를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대한 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성경의 이 두 핵심 주제들이 서로 유리되었을 뿐 아니라 종종 대척점에 선다는 사실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못 박히신 메시아 이야기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지만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류의 영웅이 아니다. 그분은 망가진 피조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그 은혜로운 하나님이 전개하시는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분, 곧 메시아이다. 구속에 대한 이 광대한 서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는 동산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 자체는 나중에 등장하지만, 그 개념은 에덴동산에 뿌리를 둔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들을 통해 다스리시는 자애로운 왕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끝없는 휴가를 즐기게끔 에덴동산에 두지 않으신다. 늦잠을 자고 장난이나 치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그 동산을 잘 가꾸고 하나님의 통치에서 흘러나오는 복을 온 세상에 확장시켜야 할 임무를 가졌다(창 1:26). 즉,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온 땅 위에 펼쳐지는 그분의 통치를 실현하는 비전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본래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땅을 다스리기는커녕, 교활하기 짝이 없는 피조물인 뱀의 통치에 복종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금이 가게 하고 온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바라던 계획을 망가뜨리고 만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부터 나오는 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에덴동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 방황하는 신세가 되어 복이 아닌 저주를 퍼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저주받은 땅에서는, 장차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자신의 발꿈치를 다치게 될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을 보여 주는 구속 역사가 싹터 오른다(창 3:15). 이 씨의 승리는 죄로 인한 저주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화목케 하며, 온 땅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시킬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신다.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승리의 약속 안에 고난의 대가를 포함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이 시점 이후로, 우리는 아담과 이스라엘의 이야기에서 승리는 고난을 통해, 높아짐은 낮아짐을 통해,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일정한 패턴을 볼 수 있게 된다.

구약성경에서 바로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일련의 언약들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통치해가는 과정을 통해 전개되고, 또한 자기 백성은 구원하고 그 대적은 심판하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의 목적이 성취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저주를 역전시키는 약속을 허락하시고, 그분의 희생으로 인을 친 언약을 통해 왕으로서의 신실하심을 확증하신다. 또한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은 백성을 종살이로부터 구속하여 자신의 나라로 옮기셨고, 이 구속 역사의 중심에는 제물로 드려진 양이 있었다. 더 나아가, 다윗은 허술한 무기로 악한 거인을 무너뜨렸고, 그의 왕권은 의로운 자가 받는 고난으로 그 특징이 묘사된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여호와의 종이 당하는 고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신약성경은 전 생애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으나,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사형을 당한 예수님의 놀라운 역설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예수님이 행하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십자가 위에서 실패한 것일까?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장애물일까? 하지만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대한 사도 요한의 묘사에 의하면, 모든 일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들려지심’을 통해 영광 가운데 보좌에 앉으시는 이 결정적인 ‘시간’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요 3:14; 8:28; 12:23-32). 이렇듯 십자가는 구속사의 중심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논리를 뒤집어 놓는 근거가 된다. 즉, 수치는 영광이 되고, 어리석음은 지혜가 되며, 낮아짐은 높아짐이 된다. 바로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좌가 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사탄을 권좌에서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신다고 증언한다(골 1:13-14; 2:15).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에 대한 ‘큰 그림’은 히브리서 2장 5-10절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복구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서 드리심으로 인류를 위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탈환하신 마지막 아담으로 묘사된다. 끝으로, 요한계시록은 왕이신 예수님이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로 삼으셨음을 밝히 드러낸다(계 1:5-6).

요약하자면, 창세기 3장 15절의 상한 발꿈치로부터 요한계시록 1장 5-6절의 다스리는 어린양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시는 바로 그 못박히신 메시아에 대한 구속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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