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토요일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글 (제이슨 후드) 나눕니다. 천천히 숙독하시면 귀한 공부가 됩니다. 

 

예수를 만나다: 다윗, 골리앗, 그리고 성경의 큰 줄기

사무엘상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족장 통치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변화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영원한 언약을 맺을 왕을 예비하신다(삼하 7). 그 언약의 줄거리는 사무엘상을 지나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의 해석은 아마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본문에는 성경 전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을 유도하는 여러 가지 단서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대로 무자비한 전쟁을 벌인 골리앗과 블레셋은 창조주와 그의 뜻에 맞서게 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대적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여자와 뱀이 원수가 되게 하셨고 여자의 후손과 그의 후손 사이가 원수가 되게 하셨다.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는 비록 상하겠지만 그들이 유혹자(뱀)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백성을 대항하는 뱀과 벌이는 싸움의 일부가 되어 머리에 상처를 입고 죽는다(삼상 17:49, 51; 창 3:15 참조). (사무엘서의 내용 중에는 특히 머리를 상한 자들의 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참수를 모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머리카락이나 수염이 상한 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 다른 창세기 3장의 암시는 골리앗의 갑옷이다. NASB 및 NET의 성경 번역은 히브리어의 원래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다. 골리앗은 “비늘 형태의 갑옷”(작은 사슬을 엮어 만든 갑옷을 말함)을 입고 있었다. 블레셋의 맥락에서 이것은 반어반인(半漁半人, half- fish, half-men)인 그들의 인어신(人魚神) 다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상력을 가진 성경 독자는 창세기 3장에 등장한 뱀과의 연결고리를 떠올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골리앗은 ‘승리자’로 알려져 있는데 문자적 해석에 따른 표현은 “두 군대 사이에서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기 위한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인 대리자이다. 그는 백성이 할 수 없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다윗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백성과 적 사이에 서서 적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의 가장 큰 적은 사탄과 백성 자신의 죄악이다. 우리가 성경의 패턴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의 참된 대속자가 되시며 더 큰 승리를 주실 다윗의 자손에 관한 투영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며: 다윗, 골리앗,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과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러한 말씀의 단서들과 성경 전반에 걸친 흐름을 따라가며 예수를 발견하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다윗의 승리에 고무되어 전쟁과 노략에 동참하는 우리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삼상 17:52–53). 우리는 “사이”에 계시는 분에 의한 대속 사역의 수혜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치를 전쟁에도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로마서의 처음과 마지막에 있는 구절을 통해 어떻게 성경이 이런 연관성을 이루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처럼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적을 물리쳤다는 기쁜 소식에 전념할 것이다(롬 1:3–4). 그리고 우리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처럼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우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는 약속을 기억하며 나눈다(롬 16:20). 바울의 조심스러운 어법에 주목하라. 하나님 자신이 사탄을 상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그 과정에 우리의 발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싸움에 참여하지만, 승리는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고전 15:10 참조).

바울은 아마 예수로부터 이런 식의 이해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서 그의 나라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72명의 제자의 사역 보고를 들으시면서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며, 창세기 3장이래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인 대적을 상징하는 생물인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다고 말씀하신다(눅 10:17-20).

다른 곳에서도 바울은 우리의 영적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죄와 사탄을 대적하라고 격려한다(엡 6:10-20, 사 11:5; 49:2; 52:17 참조). 우리의 무기와 전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과 일과 십자가로 싸우시듯 우리도 창과 돌팔매가 아닌 믿음과 평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무기로 싸운다.

이 모든 것은 동시에 낮게 겸손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승리를 써 내려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도 아니다. 또한 전쟁에 소집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고귀한 일이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려면 예수께서 사탄의 거인들과 죄를 결단력 있게 정복한 것과 같은 상상력과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받는 자이며 동시에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쟁에 참여한다.

기대하며: 다윗의 완성되지 않은 승리

우리는 또한 다윗의 이야기에서 예수와 우리 자신을 본다. 다윗과 그의 위대한 자손 모두 삶은 단순히 승리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윗의 성공 이후 이야기는 긴장감의 시간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기름 부음 받은 왕이자 승리자였던 다윗은 이제 사울에게 경멸당하고 거부당하며 부당하게 추적당한다.

다윗이 기록한 수많은 시편은 예수의 삶의 모범이 된다. (본문에는 적어도 5번 이상 다윗을 추격한 사울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기름 부음 받은 왕인 그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부당했고, 초를 마셨으며(시 69:21), 옷은 나누어지고 관절은 찢겼으며(시 22:16-18), 그와 함께 빵을 나눠 먹었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거부당했으며(시 27:12), 위증자들의 모함을 받았다.

다윗의 고통은 기름 부음을 입었으나 거절당한 다윗의 자손에게 유형학적 패턴으로 작용한다. 시편의 말씀들은 여전히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집이기 때문에 메시아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험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다(시 37:11; 마 5:5).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고통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윗과 예수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정하고 마귀의 계략에 대항하여야 한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갈보리에서 이미 결정적인 시합이 치러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탄에게서 느끼는 분노는 패배한 원수의 분노이다(계 12:12). 골리앗과는 달리 그는 여전히 배회할지 모르지만(벧전 5:8), 골리앗과 마찬가지로 그의 머리는 이미 부서졌다(골 2:15, 요 16:11, 히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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