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금요일

 

탄식의 기도에 관한 글 (죠 레아) 나눕니다. 

 

나는 그날 마트에서 한 손으로는 카트를 끌고 다른 쪽으로는 18개월 된 딸을 안은 채, 비어 있는 계산대를 찾고 있었다. 아침부터 아이에게 미열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마트에서도 딸을 카트에 앉히는 대신 안고서 장을 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상체를 꼿꼿이 세우더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호흡 곤란이 온 것처럼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했고, 구역질을 시작했으며, 몸을 뒤로 굽혔다가 다시 내 쪽으로 납작하게 기대왔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입술이 둥그런 모양으로 굳어짐과 그 주위가 그 주위가 한눈에 보기에도 알아챌 정도로 파래졌다. 십 분 가량 아이는 멍한 상태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섭고 떨리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일단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가 질식한 것은 아닌지 확인한 후 직원에게 119에 연결해 줄 것을 긴급하게 요청했다. 곧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천만다행히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며 날 안심시켜 주었다. 원인은 갑작스런 고열에 의한 열성 발작이었다. 십오 분쯤 지나자 딸 아이는 나를 알아보고 물을 달라고 했고, 이내 자고 싶어 했다. 다음날까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그날의 일은 그렇게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구급차를 기다리던 그 순간, 경련이 너무 심해 아이가 곧 의식을 잃을 처럼 보였던 그 무시무시하던 때,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탄식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날의 고통은 짧았지만,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처절한 고통과 슬픔을 겪으며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또한 지인 중에 장애가 있는 이들이 있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긴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지, 또한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의 기도를, 탄식에 가까운 기도마저 모두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로마서 8장은 이러한 진리를 잘 보여준다.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중략]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3, 26-27).

바울이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언어적으로 잘 정제된 기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적나라한 탄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러한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기도에 관한 바울의 이와 같은 고백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세 가지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1. 탄식의 기도를 들으신다

누구의 기도이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이 우리의 탄식하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실로 놀라고도 감사한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면들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로 붐비거나 시끄러운 곳이라고 해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특별히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방이 행복한지 슬픈지, 아니면 신난 상태인지 지루해 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탄식의 기도, 일체의 생각과 바람을 다 ‘들으신다.’ 자신조차도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지도 못한 내 영혼의 몸부림까지도 그분은 아신다. 

너무나 큰 고통과 고뇌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분을 송축하기는 커녕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은 탄식의 기도를 들으신다. 바울이 말한 “마음을 살피시는 이”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때조차 언제나 그 자녀의 기도를 들으신다. 

2. 탄식의 기도를 이해하신다

하나님은 아무 말 못하는 기도까지도 들으신다. 다윗 역시,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4)라고 고백한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며,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들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시는 분이다. 다윗은 가슴을 저미는 애가인 시편 38편에서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9절)라고 읊조린다. 이는 곧 다윗이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8절)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시며, 또한 그가 이 사실을 믿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하늘이 선포하는 그분의 영광, 그리고 밤과 낮이 하는 “말”을 들으시는 분이시므로(시 19:1-3), 그분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시고도 남는다. 

로마서 8장이 묘사하는 “속으로 탄식하는”(롬 8:23) 모습은 피조물이 지닌 슬픈 단면이자 한계이다. 고통이 너무도 깊어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롬 8:26),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 8:27). 성령 하나님은 마음 속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또한 그 고통을 보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이처럼 로마서 8장에서의 바울은,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에 살았던 다윗의 고백보다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는 딸을 안고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바울이 말한 바로 그 성령 하나님이 애타는 나를 깊이 이해하고 또 그런 나를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계셨다.  

3. 탄식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신다

언어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지을 뿐 아니라, 아이가 성인이 됨과 함께 발달하는 일종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세상을 밝히며, 또한 각자의 생각과 소망을 표현한다. 우리 개신교인들은 중요한 영적 진리를 논함에 있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늘 강조하곤 했다. 또한 개신교는 믿음에 관한 핵심 진리를 누구라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 위에 세워졌다. 다시 말해 개신교는 언어를 통한 진리의 전달을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기도까지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신다. 그리고 그 탄식을 알고, 이해하며, 귀하게 보시는 주님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은혜, 그리고 사랑을 깨닫는다. 로마서 8장에서 성부 하나님은 바울을 향한 성령 하나님의 탄식을 기도로 받으신다. 우리의 탄식마저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다윗 역시 하나님이 자신의 “눈물”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한다(시 56:8). 그날 딸을 위해 울던 나의 기도는 비록 불완전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고통이 너무 커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의 탄식, 슬픔에 너무도 짓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들의 신음,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 당하는 아픈 사람들의 갈망 역시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으신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귀하게 여겨진다. 우리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기도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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