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월요일

 

섬기는 리더십에 관한 귀한 글 (존 블룸) 나눕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인 리더는 섬기는 리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 22:25–26). 

주어진 각 상황에서 섬기는 리더십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말하자면, 어떤 경우 섬기는 리더는 다른 이들의 발을 씻기는 자일 수 있겠지만(요 13:1–17), 어떨 때는 꾸짖기도 해야 하고(마 16:23), 징계도 해야 한다(마 18:15–20). 자기 비용을 들이면서 섬겨야 할 때도 있고(고전 9:7), 강한 명령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고전 5:2, 11:16).     

흙탕물 속에 들어서기

이미 흐려진 물을 더 흐리게 하는 요인들은 부지기수다. 우선, 내면의 죄로부터 자유로운 그리스도인 리더는 아무도 없다. 이는 그들의 성숙도가 최고에 달해 있을 때조차도 그들은 여전히 결함투성이의 종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리더들의 성숙도는 내가 말한 그 최고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그들의 지도를 받는 그리스도인 역시 내면의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그들의 성숙함도 최고에 이르지 못했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인 리더들과 그들의 리더십 아래 있는 이들 모두 각기 다른 성향, 경험, 은사, 그리고 부르심이 있어서, 이로 인해 리더들이 리더십을 수행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리더십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지도자가 진실된 마음으로 섬기고자 해도 진실된 마음으로 리더십을 따르고자 하는 이에게조차 그것이 자기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고후 1:24)처럼 보여질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속이는, 자기밖에 모르는 늑대 같은 리더들도 한동안은 섬기는 리더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리더의 행동이 그리스도를 닮은 섬김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려면 관대함, 인내심, 겸손한 마음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섬기는 리더가 누구인지에 대한 일률적인 정의 같은 것은 없다. 많은 교회들의 필요와 상황들은 실로 광대하고 다양하므로 다양한 종류의 리더와 은사들이 필요하다. 리더의 마음의 동기를 평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견들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각자는 특정한 종류의 리더에게 끌리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선호도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무자비한 기준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섬기는 리더의 표지

신약 성경은 여전히 우리에게 기독교 리더를 선택할 때 합당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가르친다(딤전 3:1–13). 어떤 리더가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그리스도를 닮은 섬김이라는 것을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을까? 완전하진 않지만, 필자는 섬기는 리더의 다섯 가지 근본적인 표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섬기는 리더는 자기 주인의 영광을 구한다

자기 명성이나 자신이 목회하는 교인들이 그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의 주인이시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 7:1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닮은 리더는 그리스도의 ‘종’(엡 6:6)이며, 시간이 갈수록, 대외적인 칭찬, 지위, 또는 경제적 안정이 아닌 그리스도께만 충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리더의 충성 속에서는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시 15:4)라는 시편 말씀이 실천된다.

2. 섬기는 리더는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이 섬기는 이들이 최고의 기쁨을 누리도록 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자기 주인의 영광을 구하는 일과 충돌하지는 않는다. 예수께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중략]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 28)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질, 받은 은사들, 능력, 그리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섬기는 리더는 사람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빌 1:25; 2:9–11) 요구되는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돌아가게 한다. 

3. 섬기는 리더는 복음을 방해하는 것보다 자기 권리를 포기할 것을 택한다

바울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바울이 어떤 음식이나 음료를 스스로 금하고, 그가 섬기던 사람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손수 일하여 자비량으로 사역을 하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굶주리고, 헐벗고, 매를 맞고, 노숙을 하거나, 교회 안팎에서 수모를 당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고전 4:11–13; 9:4–7). 그는 아내를 얻을 권리도 내려놓았다(고전 9:5). 이는 모두 그가 순교 당하기 오래 전에 했던 결심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바울이 세운 기준은 실로 높다. 하지만 섬기는 리더들은, 자기 권리 포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기꺼이 그리 할 것이다.    

4. 섬기는 리더는 자기가 얼마나 알려지고 유명해지는지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는다

세례 요한처럼, 섬기는 리더는 자기 자신을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요 3:29)로 여기기에, 자기가 맡은 일이 얼마나 지명도가 있느냐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지명도 없는 역할을 맡은 이들을 얕잡아보지도 않고 지명도가 높은 일만 중요한 것으로 여겨 그런 일들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고전 12:12–26). 그는 자신이 받은 역할을 청지기로서 최선을 다해 잘 감당하고자 할 뿐, 역할을 선택하여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임을 기쁘게 인정한다(요 3:27).  

5. 섬기는 리더는 자신이 쇠하여야 할 때를 알고 그 때가 오면 묵묵히 받아들인다

모든 리더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섬기는 법이다. 어떤 기간은 길고 어떤 기간은 짧다. 어떤 기간은 풍성하고 어떤 기간은 빈약하다. 어떤 기간은 기록도 되고 추억에도 남지만 대부분의 기간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기간은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9–30)라고 말했다. 

리더 자신이 자신의 기간이 끝났음을 먼저 인식할 수도 있고, 때로는 다른 이들이 먼저 이를 알게 될 수도 있다. 때로는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어떤 리더의 기간이 부당하게 끝나버리게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섬기는 리더는 그가 맡은 역할을 그리스도를 위해 묵묵히 내어드린다. 자신의 정체성과 신뢰의 근거가 자신의 부르심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의 리더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대하라

섬기는 리더의 다섯 가지 특징을 모두 완벽하게 체화한 기독교 리더는 이 땅에 없다. 그런 리더는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우리를 이끄는 리더들의 대부분은 그저 신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불완전한 종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 리더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들은, 첫째, 위에서 말한 표지들 중 하나라도 그들에게서 보인다면 우리의 입을 열어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격려하는 것, 둘째, 그들이 넘어질 때는 우리의 입을 닫고 조용히 인내해주는 것, 셋째, 리더들이 우려할만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관대한 마음으로 그것을 평가하고 은혜로운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리더들과 ‘대면하여’ 이야기할 때도 이 세 가지를 적용하고, 리더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도 이를 적용하라. 

만일 리더가 자기 기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면,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을 통해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고, 부드럽고, 인내심 있는 격려를 통해 이를 알려주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책망을 하도록 하라.  

하지만 디오드레베처럼(요삼 9) 종종 리더의 죄악된 결함이 큰 해를 끼치기도 한다. 또는 가룟 유다처럼(눅 6:16) 늑대 같은 리더로 차후에 드러나는 이들이 있다. 그런 경우, 은혜롭게 반응한다는 것은 타당하고 경건하며 성숙한 제자들이 종으로서 먼저 꾸짖고(마 16:23) 심지어 징계하기까지(마 18:15–20) 하는 모습일 것이다. 어떠한 리더에게 이렇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정 기간 관찰을 해보면 그에게서 이 다섯 가지 표지들이 현저하게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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