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토요일

 

교회와 예배에 관한 글 (캐롤린 콥) 나눕니다. 

 

항상 나를 괴롭히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다 들어있으며, 그 이야기가 없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르지 않고 어설픈 느낌마저 준다. 예수님에 대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장면을 노래 속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노래(이 페이지에 포함된 가사 참조)를 만들면서 나는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느꼈다. 

그것은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의로운 분노를 표출하는 이야기다. 상을 내던지고, 채찍을 휘두르고, 환전상과 상인을 몰아낸다. 그의 내면에는 뜨거움이 솟았고 그의 눈은 질투심으로 번뜩였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궁금한 적이 있는가? 이 점을 생각해보라. 이 상인들은 희생 동물과 성전 화폐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그 두 가지는 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신자들에게 중요한 자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책, 팟 캐스트, 음악, 성서 연구 등을 제공함으로 예배에 도움을 준다. 자,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지?

콘서트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새 앨범과 상품을 발표하고, 가끔 컨퍼런스에서 연설과 진행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 되기를 갈망하는, 일종의 기독교 자원을 판매하는 ‘산업(industry)’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오시면 상을 뒤엎을까? 우리가 하는 SNS는? 컨퍼런스는? 내 콘서트는? 내 마음을 보시면? 

중요한 맥락

해마다 고대 근동 전역에서 온 순례자들이 유월절 축제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다. 유대 율법에 따라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해서는 희생에 적합한 정결한 동물이 필요했다. 먼 거리를 여행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제물로 쓸 동물을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했고, 따라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동물을 사야만 했다. 또한 필요한 성전 세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자국 화폐를 성전 화폐로 바꿔야했다. 

성전 외곽 뜰에서 상인과 환전소는 희생 동물과 성전 화폐를 제공했다. 그들은 순례자들로 하여금 제사를 준비하도록 했다. 성경주석가인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그들은 유용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상품 그 자체, 심지어 사고 파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이런 상인들이 없었다면 예루살렘으로 오는 순례자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방법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분노한 이유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화를 내셨나?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1. 훼손된 증언

상인과 환전소는 이방인의 뜰 안에 가게를 세웠다. 이 바깥 뜰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외국인을 상상해보라. 성전에서 이보다 더 멀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사고 파는 큰 소리, 가축의 소음과 악취, 동전의 울림으로 가득한 이 혼잡한 시장에서 어떻게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가게가 되었기에 분노하셨다(막 11:17).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그에게 예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벌이는 장사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아예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 

2. 공허한 예배

같은 날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셨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다. 팀 켈러(Tim Keller)는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에 대한 완벽한 은유이며, 단지 그런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를 위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완벽한 은유”라고 지적한다. 성전 정화는 공허한 종교 활동,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 열매 없는 의식에 대한 기소다. 상인들은 하나님의 기도의 집을 시장으로 만듦으로써 예배를 공허하고 상거래와 같이 그냥 들어갔다 나오는 의식으로 전락시켰다. 

3. 자기 중심의 이유

예수님은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여 이 상인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서비스와 자원을 가장하여 순례자의 헌신을 악용했으며 종종 엄청난 금액을 청구했다. 그들의 동기는 여호와 예배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과 개인적 풍요였다. 기껏해야 그들은 예배를 사업의 기회로 왜곡한 것이고, 최악의 경우 예레미야서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께 적대적인 욕심에 가득한 인간들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들은 사람들로부터는 돈을 훔쳤고 하나님으로부터는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빼앗았다. 

오늘날 교회에서 상을 뒤엎기

혹시 현대 서구 교회 문화가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번잡한 성전 외부의 뜰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가? 우리는 건강과 부를 약속하면서 취약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탐욕스러운 거짓 교사들이 일으키는 심각한 사례를 주변에서 계속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 더 미묘하고 더 교활하며 또한 훨씬 더 널리 퍼진 상업주의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킬만한 그 무엇이 우리 교회와 우리 마음에 스며든 것은 아닌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며 돈을 벌고, 소셜 미디어에 내 음악을 홍보하고, 또 콘서트 후에는 음반을 파는 ‘판매대’를 운영하는 싱어송라이터인 내게는 경고가 된다. 또한 기독교 유명인과 수많은 기독교 상품으로 넘쳐나는 오늘날 서구의 모든 복음주의자들에게도 경고가 된다. 

이 경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기독교 서적과 음악을 쓰고 홍보하는 것을 그만둬야 하나? 출판사와 음반사 그리고 모든 컨퍼런스를 포기해야 하나? 예수님은 내 음반이 전시된 테이블도 뒤엎으실까? 

어쩌면 그러실지도.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과장된 것이며 성전과 교회를 일대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잠시 이런 불편함을 느껴보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 질문과 씨름하자. 우리는 어쩌다 예수님의 격노를 불러일으킨 상인과 환전소처럼 된 것일까? 

우리 교회, 행사, 또 소셜 미디어 프로필이 판매 홍보물로만 가득 차버리는 바람에 도리어 열방과 잃어버린 이웃을 위한 복음의 목소리가 밀려나는 것은 아닐까? 회개와 온 마음을 다한 제자도가 소홀히 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예배에 필요한 자원을 홍보한 적이 있는가? 어쩌다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이윤과 무대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영광을 쫓게 되었는가? 

우리 각자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간증과 예배,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동기를 거듭해서 깨끗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마음과 교회, 그리고 조직의 테이블을 뒤엎어서 우리의 동기를 성결하게 하심으로 우리 속 가장 깊은 갈망이 오로지 그분을 향한 경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 진정한 성전이자 우리의 희망

예수님은 더 참되고 더 나은 성전이다. 그는 율법의 성취며 완전한 대제사장이며 흠 없는 어린 양이다. 그는 더 진실하고 더 나은 증인이다. 그를 통해 모든 나라와 부족 그리고 언어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개인적인 이득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께 드리는 희생적인 사랑과 순종이 동기가 되는, 완전한 예배의 삶을 사셨다.

예수님, 필요하다면 상을 뒤엎으셔서 나도 예수님처럼 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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