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금요일

 

복음에 관한 글 나눕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복음은 타락의 선언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이 선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복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 나의 흉악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아래 있다는 이 선언에서부터 복음은 시작된다.

이를 잘 아는 사탄은 복음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것은 긍정의 속삭임이다. “네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사탄은 절망적인 인간에게 긍정의 불을 지핀다. 

이것은 오래된 속삭임이다. 사탄은 첫 사람 아담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사탄의 이 속삭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사탄이 오늘도 우리를 파멸로 이끌고자 우리에게 이렇게 주입하고 있다. 인간은 괜찮은 존재다. 인간은 이성의 존재다. 인간은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은 신에게 반항할 수 있다. 

칼빈은 말한다. “진실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는 사람들은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자력으로 싸우라고 가르치는 것은 갈대로 우리를 높이 드는 것과 같다. 그 갈대가 꺾이면 우리는 떨어지고 만다. 허망한 사람들이 생각하고 지껄이는 것은 모두 연기와 같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의 것을 찾으라고 강요하고, 사람이 자기를 높이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음성이다.” 

칼빈에 앞서 아우구스티누스도 동일하게 경고한다. “아무도 자신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도 인간성의 능력을 중요시하는가? 그것은 상하고 부서지고 혼란하고 망하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한 고백이지 그릇된 자기변호가 아니다.”

초기 교회부터 종교개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사탄의 이 끈질긴 계략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간다. 사탄은 오늘도 그 목소리를 위장하여 우리의 도덕의식, 비판력, 정의감에 짐짓 호소하는 듯 ‘인간이여, 그대는 괜찮은 존재다’라고 속삭인다. 사탄은 오늘도 그 목소리를 변조하여 우리더러 성경 지식을  깨달음을, 열심을, 헌신을 자랑하라 부추기며 ‘너희는 괜찮은 신자다’라고 속삭인다. 더 나아가 사탄은 ‘너의 삶의 주인은 너다’라고 속삭이며 주인 되신 하나님께 반항하라 부추긴다. 이 속삭임에 굴복하여 우리 사회의 한 쪽에서는 사회의 미덕과 규범을 당당하게 어기고 반항하는 사람들을 ‘매력 있다’ ‘용기 있다’며 찬사를 보내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단언한 것처럼, 결단코 우리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이만하면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실 거야!’ ‘나는 평생 법 없이 살았어!’ ‘나는 평생 진리를 가르친 사람이야!’ 자신의 종교 생활, 공로, 선행이 은근한 의가 되어 남들과 비교하면서 공로 의식에 젖어 사는 것이야말로 지옥에 이르는 멸망의 대로이다. 하나님은 남들 눈에는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은폐한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의 구원을 포기해야 살 수 있다. ‘나 같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우리 내면의 이 뿌리 깊은 자기 의, 자기 숭배를 포기해야, 산다. 내 안에 구원의 길이 없음을 깨닫는 사람, 자기 파산을 선언하는 사람,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비로소 예비 하신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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