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월요일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는 글 (로니 말틴) 나눕니다. 

 

당신은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우리는 각자의 태도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약간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열정적으로 다가가 기꺼이 초대자를 자처하는 성도, 아니면 경계심 혹은 무관심으로 그들의 눈을 피하는 성도. 둘 중의 어느 경우일지라도, 고민해야 하는 동일한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명백한 외부인’으로 대한다는 사실이다. 

복음을 거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내 제안은 단순하다. 우리는 복음의 전파자로서 환대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그들에게 환대를 베풂으로써 복음이 전파될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복음적 환대

많은 경우, 사람들이 교회에 처음 들어올 때 ‘내가 여기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한다.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교회에서 복음적 환대를 보여 줄 수 있는 간단한 방식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친절하라

진정한 따뜻함과 친절을 베푸는 크리스천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외부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의 교회들이 환대의 영역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나는 교회가 친절을 어떻게 베풀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는 환영을 담당하는 집사가 따로 있다. 그녀는 교인들에게 부드럽게 다가서는 방법을 가르친다. 친절은 이론적으로만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과 환대를 베풂으로써 시작한다.

2. 도움이 되라

낯선 자로서 교회에 처음 들어오는 일은 긴장되고 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교회의 규모와는 전혀 상관없이, 두렵고 압도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그들이 질문하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 먼저 다가가서 묻고 대답하는 일이다. 찾기 어려운 장소에서 성도 간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면,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와 모임 장소를 알려주고, 질문이 있으면 기꺼이 대답해 주겠다고 말하라. 이러한 소소한 친절이 교회를 처음 찾은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또한 그들을 교회의 중앙으로 나아오도록 이끈다.

친절과 도움을 바탕으로 새신자들에게 복음적 환대를 잘 베푼다면, 이는 그들에게 복음으로의 초대장을 건네는 것과 같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초대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건네는 3 가지 방법을 배울 수 있다.

1. 교회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

“외부인들에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 4:5).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사람들이 찾아오면 예배 시작이나 마지막, 혹은 중간에라도 그들에게 존중과 환영을 표하라. 이러한 소통은 다양한 신앙과 관점 및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교회의 한 좌석을 차지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또한 목회자가 비그리스도인을 잃은 양이라고 표현할 때 느낄 수 있는 이질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배타성을 내려놓고 우호적으로 다가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향기를 전할 수 있다. 

2. 내부자들만의 언어를 줄이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라”(골 4:6). 

그리스도의 은혜를 잘 설명하는 용어인 속죄, 칭의, 성화와 같은 단어들을 삼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부자들만 사용하는 은밀한 언어를 피하라는 말이다. 그러한 언어는 당신의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내부자들만의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들릴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서 그들에게 배타적인 느낌을 줄 필요가 있는가?

사역과 행사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축약어나 과장되게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 주일 예배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다.

3. 어리석은 자를 품으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이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그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굳이 메시지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복음의 메시지는 명확하고 강렬해야 하며, 이를 전하는 사람은 선포하는 복음의 본질을 두려움 없이 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을 품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죄 문제를 다루지 않는 변형된 복음은 죄로 인해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교회를 찾은 외부인들에게 환영받는 느낌을 주는 손쉬운 속임수나 일련의 술책은 없다. 성도들이 복음적 환대를 겸손히 실천할 때,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성령의 일하심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피로 세우신 공동체가 아직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돌아올 집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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