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월요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때에 읽을 귀한 글 (존티 로오드즈) 나눕니다. 

 

1세기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 어디선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오랜 여정에 지친 여행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만히 다가가 창문 너머를 응시한다. 무엇을 보았을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아기다. 그날 밤 이스라엘에 태어난 여느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는 아기다. 아기의 두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점에서 진짜 인간이셨고, 진짜 인간이시다. 진짜 사람의 심장이 진짜 사람의 몸 안에서 박동하신다. 진짜 사람의 영혼, 진짜 사람의 지성, 진짜 사람의 감정이 다른 모든 사람들 안에 있듯이 예수님 안에 모두 있다. 진짜 사람의 폐로 그날 밤 이 땅에서 그는 첫 호흡을 시작하셨다. 고요했을 것 같지 않은 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일러주는 대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여느 아기와는 다른 아기가 보인다. 뭔가 다르다. 아담 이후로 태어난 보통의 남녀와 달리, 아기 예수는 죄가 하나도 없이 태어나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찬송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의 거룩하신 얼굴(thy holy face) 광채가 세상 빛이 되셨네.”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그의 신성의 영광이 (변화산에서 잠깐 보이신 것을 제외하고는)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아기 예수의 얼굴에서 실제로 빛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찬송은 중요한 진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이 그가 우리시는 구속, 구원의 핵심이라는 바로 이 진리다.

인간의 타락 이후, 아담의 죄와 부패한 마음은 이후 오고 오는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다(롬 5:18-19). 따라서 우리는 타락하고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본질상 죄인인 우리는 죄의 욕망을 좇아가게 되어 있다(약 1:14-15).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는 예수님께는 해당하지 않는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말한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신비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생물학적으로 확실히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지만, 성령께서 마리아의 타락한 본성이 예수님께 전혀 전가되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첫 창조의 때에 수면 위에 운행하셨던 성령께서 이제 여기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새로운, 이전에 없던, 거룩한 인성을 창조해 내신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도 우리처럼 타락한 본성을 지녔다며 논쟁을 벌인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까지 포함한 실제 인간의 모습이 되셔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입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죄인인 우리를 구속할 수 있으려면, 예수님은 점과 흠이 하나도 없는, 죄 없는 희생제물이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 그는 온전히 무죄하셔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마 3:15). 예수님은 아담과 우리가 실패해 버린, 하나님 율법의 완벽한 성취를 이루셔야 했다. 만약 예수님이 타락한 본성을 지녔다면 율법의 성취나 대속의 죽음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복음은 예수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다는 사실에 기초한다(벧전 3:18). 우리의 죄와 죄책이 예수님께 “전가”된 것이지, 그분께 실제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다. 참 인간이라는 것은 죄와 상관이 없음을 의미한다. 첫 사람 아담은 죄가 없는 상태로 지음 받았다.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날이 오면 우리도 죄 없는 참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참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벽하게 거룩한 분이시다. 그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롬 8:3),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지만 죄는 없으셨다(히 2:17).

예수의 잉태와 나심으로 그의 구원하시는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날 밤 베들레헴에서 구속의 은총의 서막이 열렸다. 바울은 우리에게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전한다(갈 4:4). 1세기 당시가 왜 ‘그때’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쉽지 않다(롬 5:6). 당시 하나님의 백성은 중동과 지중해에 흩어져 있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여러 민족이 하나의 언어, 그리스어를 통용하게 되었다. 이후 로마의 세계 정복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여행이 쉬워졌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몇 전이나 이후보다는 이때가 가장 복음이 멀리, 빠르게 퍼지는 데 유리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때가 하나님의 적기였다. 분명 고요한 밤은 아니었을 그날 밤, 기쁜 소식이 있었으니 곧 우리를 죄와 사망, 어둠의 권세에서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신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점과 흠이 없는, 죄 없는 희생제물이셔야 했다.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시는 제물이 되시려면 온전히 무죄하셔야 했다. 하나님의 법을 완벽히 지키시고, 우리가, 아담이 실패한 삶을 사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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