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주일

 

창세기 17장 17-18절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불성설이 없다. “이치에 맞지 않아 도무지 말이 되지 않음.” 어불성설의 뜻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많다. 다시 한번 약속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도 그랬다. 늙은 사람이 어찌 아이를 낳겠는가. 말이 안 된다. 아이를 못 낳아도 괜찮다. 왜? 이스마엘이 잘 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에게서 얻는 웃음은 참 웃음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가정과 온 세계에 참 웃음을 선물하시려는 하나님은 굳건한 약속의 말씀을 하신다.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진정한 웃음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에게서 시작된다. 이삭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온 세상의 참 기쁨이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이나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눈에 보이는 현실에 타협하지는 않는가? 우리의 생각은 현실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느나 주님이 주신 믿음은 현실 언덕 너머에 있다.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며 인도하실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오늘 주일이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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