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주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금의 비유에 관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귀한 글 연재해 나눕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피조물 중에 소금만큼 평범한 것도 별로 없다.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우리는 이미 지난 몇 시간 동안 소금과 상호 작용해왔다. 가죽, 도자기, 비누, 세제, 고무, 옷, 종이, 청소용품, 유리, 플라스틱, 의약품을 만드는 데 소금이 사용된다. 소금은 전 세계 수억 개의 카페와 레스토랑 테이블에 놓여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보통 옆에 나란히 있는 후추와 달리 소금은 건강에 필수적이며 사람이 정착한 곳이면 어디에서나 항상 필수품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언어에 단맛과 짠맛을 구분하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소금은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이다. 눈이 쏟아지는 날 도로 곳곳에 뿌리는 것도 소금이다. 우리가 만드는 화학 제품의 절반 이상이 특정 단계에서 소금을 포함한다. 소금과 관련해서, 지구 표면의 70퍼센트를 덮고 있는 바다의 수조 톤의 물질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렇게 소금은 어디에나 있다. 

예수님의 비유

모든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소금의 평범함은 예수님의 예화에 좋은 후보가 되게 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관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상용품 사용을 즐겼으며,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마 5:13)으로 묘사하신 것이 가장 잘 알려진 예이다. 오늘날까지도 선하고 정직하며 겸손한 사람을 묘사할 때 이 표현을 쓴다. 의외이겠지만, 롤링 스톤즈의 노래, D. H. 로렌스의 시, 그리고 탈취제, 연수기, (당황스럽게도) 와인을 비롯한 흥미로운 다양한 제품의 이름에도 소금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 정말 이상한 점이 있다. 예수님이 정작 세상의 소금이라고 부른 사람들, 엄청나게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소금이 의미하는 바를 배웠다. 그러니까 우리의 임무는 세상을 더 맛있게 만들고, 또 썩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설명은 종종 서로 충돌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예수님은 음식이 아니라 세상(땅)과 관련해서 소금을 언급했다. 땅에 소금을 뿌리는 건 원수를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시킨 후에 하는 일이다.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소금을 불과 연결할 뿐 아니라 또한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과도 연관시킨다(막 9:49-50). 둘 다 맛이나 보존이라는 개념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기술적으로 볼 때, 염화나트륨은 어떤 경우에도 맛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고대 세계에서 소금이 갖고 있던 다양한 목적 때문이다. 그 중 적어도 다섯 가지는 제자들을 향해 세상의 소금이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다. 소금은 맛을 내고, 보존하고, 희생하고, 파괴하고, 또한 비옥하게 하는데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혼란스럽다는 가정 하에 예수님이 특히 염두에 두었던 소금의 특정 용도가 뭔지 토론하기보다는, 소금에 대한 모든 지식을 다 갖고 있었던 예수님이었기에 그의 은유가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예수님의 제자는 소금과 같다. 우리 또한 소금처럼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고 또 우리가 눈치채건 아니건 이 세상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역할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2월 27일 주일”에 대한 1개의 생각

  • 나에게 오늘이 허락된 의미를 생각하고 나의 역할을 소중히 감사하게 해낼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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