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토요일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귀한 글 (메튜 베렡) 연재해 나눕니다. 

 

요즘 문화에서는 ‘질투’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왜냐하면 화를 못 이긴 남자 친구의 거친 행동을 묘사한다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욕심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 단어를 흔히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질투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가진 무엇인가를 시기하고 탐내는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즉, 이제 이 단어의 의미는 비이성적인 행동, 정당하지 않은 분노, 또는 신랄한 비판의 태도 등과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할 때 ‘질투’라는 표현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이 질투를? 그럴리가, 거룩하신 분이 무슨 질투를 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면, 그 단어가 하나님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은 하나님이 질투하신다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출 20:3-5), 그분의 이름을 질투라고까지 소개한다(출 34:14). 다시 말해, 하나님은 단지 질투하는 행동을 하실 뿐 아니라, 그 본성상 질투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게 과연 가능한 말인가?

거룩한 질투

일단 성경에서 사용하는 ‘질투’의 의미는 현대 문화에서 통용되는 뜻과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그 단어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를 묘사할 때, 또는 우리가 그분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령을 수식할 때 사용되곤 한다. 또한 하나님의 질투는 그분의 사랑을 반영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의 사랑은 비타협적인 사랑, 즉 자신의 영광이 자기 백성의 우상 숭배로 더렵혀지는 일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성경에서의 ‘질투’는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영광을 위한 비타협적인 사랑과, 그 백성이 그분께만 돌려야 할 영광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묘사하고자 사용되는 표현이다. 따라서 성경 속의 그 단어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질투란, 어떤 비도덕적 성향을 나타내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과 완벽한 거룩성, 곧 선택받은 백성의 삶에까지 반영되어야 하는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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