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금요일

 

주기도문에 관한 글 연재해 나눕니다.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자의 마음가짐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부른 뒤에 제일 먼저 나오는 기도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우리는 이 기도제목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더 거룩해지시기를 바란다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은 ‘절대 거룩’이라 더 거룩해지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점점 더 높아지실 분이 아니라 이미 최고로 높으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하나님이 더 거룩해지고 하나님이란 존재가 더 높아지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완전히 거룩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을 향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기도자의 바른 태도를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김세윤 교수*는 ‘주기도문 강해’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당시 유대 전통과 맥락에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상 기도를 가르치신 주님도 유대 전통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제자들도 구약부터 내려오는 유대 전통의 큰 물줄기 속에서 영성을 훈련해 가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이 부분을 유대의 기도 전통 속에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내용은 십계명 제3계명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십계명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계명 때문에, 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대단히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필사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쓸 때는 펜을 씻고 목욕재계한 후에 쓸 만큼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감이 충만했다.

 

그런데 기도자가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익숙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사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게 허락하셨지만, 아무리 하나님을 친밀한 용어로 부른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경건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문은 하나로 독립된 간구 제목이라기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촉구하는 기도인 셈이다. 

 

*김세윤 교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입니다. 오랫동안 한국 신학교에서 강의하다가 지금은 미국 서부에 있는 미국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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