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수요일

 

모세를 통한 진정한 약함과 강함에 관한 귀한 글 나눕니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말로 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는 건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저마다 환경과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또 그래서 우리가 그런 통제력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힘이든 능력이든 결정권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정을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흔들리고, (또다시) 불확실성과 두려움만 남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은 자멸적인 통제력을 획득하려고 싸우는 우리를 보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모세의 이야기에서 명쾌한 교훈을 발견한다.

마흔 모세: 강하다. 그러나 약하다. 

히브리 노예를 매질하는 이집트 사람을 쳐죽일 때(출 2:11-12) 모세는 마흔 살이다. 이 시점까지 그는 파라오의 집에서 파라오 딸의 양자로 자랐다. 훗날 스데반은 모세를 이렇게 묘사한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행 7:22). 모세는 이집트인을 혼자서 처단할 수 있을 만큼 싸움에 능했다. 모세는 당연히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낼 적임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데반도 이를 암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는 [자기] 동포가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행 7:25). 

40세의 모세는 강하고 교육받았으며 숙련된 사람이다. 그는 정치 영향력, 군사 지식, 육체 능력과 더불어 자기 백성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런데 모든 게 쓸모없게 된다. 사람들이 그를 거부한다. 파라오는 그를 죽이려 든다. 그는 광야로 도망쳐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장인의 양 떼를 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기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단 한 번의 시도로 그의 원대한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모세는 이제 의미 없고 궁색한 광야 40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늘 그러하시듯이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최고의 일을 하신다. 

여든 모세: 약하다. 그러나 강하다. 

기나긴 40년이 흐르고, 하나님은 불타는 덤불에서 모세를 마주하신다. 모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채 평범한 목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강력한 인물로 쓰임 받으리라는 꿈도 그렇게 잊고 살았을 터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초기 버전의 모세가 아니라 이러한 모세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출 3:11).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팔순 모세는 약하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하나님은 왜 하필 이런 모세를 택하시려는 것일까? 왜 지금에야?

모세는 ‘당연히 하나님이 나를 쓰시겠지’에서 ‘내가 누군데 나를 사용하시려는 걸까’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그는 이제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모세의 힘을 꺾으심으로 누가 진짜 통제하고 있는지 그가 배울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는 모세가 반드시 필요하신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세의 계획이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치밀한 군사 전략을 세워 이집트로 진군하지 않는다. 노예살이하는 민족을 정교한 무기로 무장시켜 반란을 도모하지도 않는다. 모세는 말을 더듬고, 지팡이를 짚은 채 절뚝거리며 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그를 통해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전복시키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40세가 아니라 80세를 택하신다. 나이 든 모세는 자기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발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능력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깨진 질그릇을 사용하신다(고후 4:7). 모세 같은 사람들을, “내가 뭐라고 나를 사용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을 쓰신다. 바로 여기서, 약함의 고백이 있는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하나님의 은혜가 빛을 발한다(고후 12:9-10). 이것이 우리 내면에 자리를 잡을 때 이제 우리는 하나님처럼 행동하려는 욕망을 떨쳐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맡기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서 생기는 삶의 공포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된다. 

약함을 껴안고, 진정한 힘을 느껴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하라. 그러한 능력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고, 교회나 가정, 이웃 가운데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현재의 확신과 미래의 희망을 항상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맡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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