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주일

 

누가복음 13장 22-27절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예수님 앞에 문득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는 예수님께 구원을 받게 될 사람의 수에 대해 여쭈었다(23절).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대답은 숫자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묘사하시는 구원은 좁은 문이다. 비록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지만, 집주인이 문을 닫기 전에는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곤 한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에 주목하신다. ‘구원을 받는 자’에 대해서는 미래시제가 사용되었지만, 힘쓰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시제가 사용되었다. 구원은 장차 얻게 될 것이지만, 구원을 받기 위한 노력은 지금 기울이는 것이다. 문이 닫히기 전, 한시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구원의 유일한 기회이다.

본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문이 닫힌 이후의 상황을 주목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다. 문이 닫힌 후, 집주인은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자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집주인이 ‘그들을 알지 못했기에’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집주인과의 연관성을 열심히 설명한다(26절). 하지만 집주인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28절)라고 말하며 그들을 다시금 거절한다. 최종적인 구원의 여부를 두려워하는 것 보다, 내가 오늘 맺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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