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화요일

 

누가복음 16장 19-26절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선한 믿음의 삶은 세상에 큰 울림이 된다. 행동이 말보다 소리가 크다. 행동의 영향력은 메아리처럼 멀리 가기 때문이다. 한 부자는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 하지만 돌보아야 할 연약한 형제를 외면했다. 그의 무자비한 행동은 메아리가 되어 하나님 나라까지 들렸다. 당시 부자와 가난한 자는 옷과 음식과 거처로 대비되었다. 부자는 화려한 옷을 입었다. 음식이 풍부하여 날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즐겼다. 대문이 있는 저택에 거주했다. 한 거지는 입은 단벌옷마저도 허름하였다. 부잣집 대문 앞이 그의 거처였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한 끼를 때워야 했다.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기록하는 성경의 태도다. 연약하고 가난한 형제를 외면한 부자는 그저 많은 부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 거지는 ‘나사로’라고 이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죽음 앞에서 그들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다. 죽어서도 화려하게 장례식을 치렀음에도 부자는 고통스러운 음부에 들어갔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을 가진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천국은 그의 것이 되지 못했다. 연약한 형제를 외면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었다. 가난한 이웃을 살피지 않으면서 긍휼을 원하는 것은 적반하장이었다. 지금은 말씀이 쓰게 들려도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영원한 삶을 향하는 자의 태도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