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주일

 

누가복음 23장 20-25절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다수의 목소리가 크다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빌라도의 판결을 듣는다. 만족하지 못하고 갑자기 “바라바를 석방시키라.”라고 한다. 왜 그럴까? 흉악한 범죄자인 바라바보다 예수님이 더욱 악하다는 주장이다.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한다. 하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더욱 소란스럽다. 무리는 아예 로마 최고 형벌인 십자가형을 요구한다. 빌라도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세 번째로 같은 말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모인 사람들의 커지는 목소리가 이긴다. 빌라도가 무리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들어준다. 엉터리 판결이다. 

오늘날 재판에서는 지더라도 항소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엉터리 재판에 대해 나는 항소,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예수님 대신 석방된 바라바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죄인 중의 괴수가 우리다.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셨기에 바라바가 석방된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 지셨기에 죄의 감옥에서 석방된 것이다. 

주님 대신 석방된 범죄자 바라바가 곧 우리임을 기억하자. 즉, 엉터리 재판의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이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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