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월요일

 

귀한 글 나눕니다. 

 

아무리 온건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타락한 세상에서 사는 건 힘들다.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병에 걸리거나 관계가 깨진다. 생계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비록 지금은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깨어지기 쉽고 취약하다. 무엇보다 끔찍할 정도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실을 도통 인식하지 못하는 건 성숙하거나 자아실현을 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망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다. 

그렇다고 두려운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게 모든 답은 아니다. 그건 언제라도 불안으로 바뀔 수 있다. 산상수훈의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6:34)는 많은 이에게 친숙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불안이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에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고 또 과거로 인해 영향이나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불안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도 다 발생한다. 

그러면 불안이 우리를 압도할 정도로 위협이 될 때, 어떻게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여기에서 저기로 가면 된다는 식의 쉬운 조언으로 해결될 정도로 인생이 단순하지 않다. 사람마다 다 미묘한 차이가 있을 정도로 복잡한 인생이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이 불안감 해소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1. 내 과거에서 건질 가장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수록 되돌아보는 과거는 점점 더 많아진다. 지금의 정보와 지식을 당시에도 갖고 있었더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죄를 생각하며, 또는 결코 그리 쉽게 내리지 않았을 잘못된 결정을 회고하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과거에 저지른 일이 주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가 가한 악행이 가져다준 수치심에서 도통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의 사건은 종종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우리에게 가해진 일을 기억하면서 “내가 이제는 안전한가?” 또는 “나한테 그런 나쁜 일이 또 생기는 건 아닐까?” 등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또한 내가 범한 악한 일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용서하셨을까?” 또는 “내 결정이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친 건 아닐까?”라고 묻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과거 나의 행동과 나를 향한 타인의 행동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고 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말하자면, 그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과거와 관련해서 결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시고 구속하셨고 또 그분의 소유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엡 1:3-7). 당신은 이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다(요일 3:1). 당신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고전 1:30). 당신 속에는 성령이 내주하신다(갈 4:6).

2. 지금 내 현재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

조금만 솔직하다면, 현재라는 것은 단지 과거의 후회와 트라우마가, 그리고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이 만나는 곳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미래에 대한 불안과 씨름하는 현재이기에,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때때로 현재 상황은 오로지 고통과 어려움으로만 가득 차 있는 거 같다. 

단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다. 진짜 힘든 건 모든 것을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경우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현재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진실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고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히 13:5)고 약속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시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시편 88편).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당신은 완전히 혼자라고 비명을 질러도, 그건 거짓말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비록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환난 가운데 걸어가는 당신과 함께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곁에 계신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유대 관계로 당신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밤낮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당신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당신을 위해 항상 중재하신다(히 7:25). 하나님의 임재는 그가 당신을 보고 계시고 또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당신이 느끼는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심을 의미한다. 

3. 앞으로 내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게 가장 좋은 질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희망의 영역에 들어섰고 성경이 약속하는 소망은 켤코 우리를 실망시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실망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사 49:23). 미래를 생각할 때, 현실의 표면 아래에서 작은 소리로 덜렁거리는 낮은 등급의 불안에서부터 내 존재 전체를 전면적인 공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불안을 경험하기 쉽다.

몸에 장애를 갖게 되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몸 하나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쩌지? 집을 살 여력은 없는데 집세만 계속 오르면 어쩌지? 결국 결혼을 못 하고 애가 없으면, 다 늙은 나는 누가 돌보지? 배우자가 죽으면? 행여 사업이 실패하면? 우리 애의 삶이 엉망이 되거나 혹은 복음을 거부하면 어쩌지?

불안은 매우 창의적이고 불안이 가져다주는 상상력은 풍부하기가 이를 데 없다. 머릿속에서 끝없이 움직이는 불안의 스크롤을 멈추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고민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선의로 말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따라서 이러한 두려움에 직면할 때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다 더 크고 넓은 시각을 갖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관점을 넓혀야 한다. 

미래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완전한 행복 속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계 21:1-7; 22:1-5). 더 이상의 돈 문제, 인간 관계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건강으로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모든 고통과 혼란이 사라진다.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다.

어제, 오늘, 그리고 영원

시간 밖에 존재하시는 시간의 창조자 하나님은 시간에 얽매인 피조물인 우리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올바르게 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신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지속적인 은혜와 사랑의 임재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심지어 아니, 오히려 불안감에 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일수록 나를 더 꼭 잡고 계신다. 

불안이 엄습할 때 이 세 가지 질문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진정한 북쪽으로 인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든든한 나침반 역할을 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창세부터 우리를 택하셨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통해서 이뤄질 완전한 세계에 대한 약속을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11월 21일 월요일”에 대한 1개의 생각

  •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렇게 성경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을 생각하고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 할 때는 두렵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서 받은 과거의 은혜와, 현재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예수님의 중재, 그리고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도 하루 하루 더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거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친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현재라는 것이 환상에 불가하며 늘어나는 과거와 예측된 미래만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의 하나님이 일 하시는 현재를 부끄럽지 않게 하나님이 일 하셨던 과거와, 일 하실 미래를 믿으며 열심히 두려움 없이 살아가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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