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간절히 빌더라

금요설교 / 사도행전 11장 27절 – 12장 5절

1. 초대교회 당시에 예언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아마도 선지자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선지자라는 칭호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와는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 출신의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선지자라는 칭호가 익숙했기에 예언의 은사자들을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예언했던 구약시대의 선지자적 사명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더 이상 교회에 필요치 않습니다.

2. 예언의 은사는 분명히 현재도 존재합니다. 단지 그것을 분별하는 교회의 지혜가 더욱 필요할 뿐입니다. 말씀의 권위와 사실에 부속되지 않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거짓된 예언이 오히려 너무 팽배해진 이 세대에 오히려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가보는 성령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의 힘을 극대화 하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삶이 말씀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예언의 은사가 정말 판을 치겠지요?

3.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보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한인교회가 미국교회에 헌금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은 안디옥 교회가 취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마치 강조라도 하듯 여러 동사를 나열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일종의 회의를 거쳐 헌금을 모아 보내기로 교회의 뜻을 모았습니다(작정하고). 그리고 정말로 헌금을 모았습니다(실행하여). 뿐만 아니라 교회의 리더들이 직접 예루살렘으로 헌금을 가지고 떠났습니다(보내니라). 일을 하기 위한 교회의 질서있는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어려운 일들이 그들에게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누굽니까?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들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바나바에게 보여준 이들 아닙니까? 그 모든 힘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좋은 일은 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4. 하지만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음을 압니다. 물론 무리를 해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수는 있지요. 같은 일이라 해도 누구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무리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함부로 자기의 잣대로 남을 이야기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차라리 회사라면 법칙에 따라, 상사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이 구분이 되겠지만(불공평한 부분도 많겠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모두가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가 그런 때입니다. 교회에서 군대를 조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술하는 사람들을 고용할 수도 없고, 정치적 항거를 수뇌부에 할 상황도 아니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안디옥 교회에게 재정적 후원을 받았으니 차라리 그 돈을 헤롯 왕에게 주고 베드로를 빼 올까요? 그것도 좀 그렇지요? 현 시대의 교회들이라면 그런 방법도 불사하겠지만 말입니다기도입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형식적인 행사로서의 기도집회가 아닌 간절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였던 성도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간절한 기도를 했을까요? 아버지도 아니고 삼촌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데 말입니다.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도 아니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유능한 변호사도 아니고, 사회적 신분을 해결해 주는 정치인은 더구나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교회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리더였고 선생이었습니다. 주님의 일군이었습니다. 그것 한가지, 주님의 교회를 사랑했기에 정말 간절히 하나님께 빈 것이 아닐까요? 교회의 주인되시는 그분께서 하시리라 믿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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