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다릅니다

사도행전 강해 (13장 13-16절)


1. 본문에 나오는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은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를 말합니다. 바울과 함께 하였던 바나바의 조카이기도 하지요. 바로 그가 말씀 전하는 일에 함께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또한 이 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마가는 이 때에 젊은 나이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젊은 모든 이들이 다 실수한다는 법은 없지만, 젊기에 할 수 있는 실수는 분명히 있습니다. 젊은 마가는 바나바를 비롯한 초대 기독교의 어른 리더들의 모습을 보며 신앙 성장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 깊이 나도 하리라, 되리라라는 헌신과 결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기에 그는 바울 일행에 합류했을 것이고요.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습니다. 험한 파도와 싸워가며, 배를 타고 밤을 지새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하는, 뿐마 아니라 교회 일을 할 때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받던 칭찬, 그러한 낭만과는 관계가 너무 먼, 그러한 현실이 그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중간중간에 바울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돌아갔습니다. 비록 돌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그는 돌아갔습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모든 믿는 성도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 안에는 즐거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래하고, 기도하고, 가만히 앉아서 설교 듣고, 조금 열심히 교회의 일을 섬기면 어떨 때는 적잖게 칭찬도 듣고, 인정도 받고, 조금 마음에 감동이 있을 때는 다짐도 해보고, 뭐 이런 따위의 낭만들이 교회에는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진정한 현실에는 그런 재미가 없습니다. 자신과 싸워야하는,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입니다.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은 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는 불가능한 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입니다. 마가는 잠시 그것을 혼돈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 바울 일행은 더 이상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더 피곤하고 힘든 일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쉴 수 있는 자리를 과감하게 털고 일어나 사람들에게 가서 그분을 전하는 것, 이제는 우리가 할 차례입니다.

 

3. 바울의 일행은 회당장으로부터 권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기에 주님께서는 받드시 그 자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지요. 결과는 주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말하고 말씀대로만 살면 그만입니다.

 

4. 바울의 설교의 시작에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간절한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 손짓하며라는 단어가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강렬하게 말을 할 때에 손짓을 하는 습관이 유대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주신 그분을 정말 강렬하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바울에게는 있었습니다. 둘째는, 청중들을 인정하며 시작했습니다. 말을 하는 자로서의 여유와 듣는 이들의 주목을 끄는 것, 중요합니다. 바울의 설교은 이만큼 준비된 설교였습니다. 우리도 항상 준비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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