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코메디 작가이십니다

사도행전 강해 (18장 12-23절)

1. 고린도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한번 크게 체험하는 도시였습니다. 평신도 사역자들을 만났고, 동역자들을 만났으며, 탁월한 개척 리더들을 만난, 그야말로 만남의 도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울을 향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새로이 취임한 그리스 지역의 로마 총독에게 끌려 가게 됩니다. 고린도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바울이었지만 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에게 불려가 종교에 관한 건수로 고소를 당하고 있었을 때의 바울은 더욱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치 코메디와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총독은 자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정을 내립니다. 게다가 고소자들인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어 버립니다. 그뿐입니까? 헬라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유대인들에게 시범을 보이듯, 회당장 소스데네를 끌어다가 매를 가합니다. 코메디 아니고 무엇입니까? 로마의 라스 베가스,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이 대놓고 창피를 당하는 웃지 못할 블랙 코메디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탁월한 코메디 작가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으로도 성도들을 보호하십니다. 세속의 권세와 세상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피할 길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간구의 제목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주님의 섭리의 손 안에 있습니다.                                                             

 2.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도대체 어떤 매력을 심어 주었을까요?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그것은 이해가 갑니다. 살기 위해서 그랬다 치더라도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이것은 무엇일까요? 그곳에서 물론 그분들이 할 일이 있었겠지요(아볼로 교육). 에베소로 떠났다는 사실 보다는 바울과 함께 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바울의 매력말씀을 빼면은 무엇이 남을까요? 유대인 리더로서의 갖춘 내.외적인 조건들글쌔요, 그것이 과연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에베소로 함께 할 만큼의 매력이 될까요? 말씀입니다. 진솔함입니다. 자신과 싸우는 외로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절규입니다. 그러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일군들을 만나길 우리 모두 소원합니다.

 

3.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에베소로 떠나기 직전에 갑자기 머리를 짜릅니다. 그는 나실인의 서원을 한 유대인입니다. 나실인들은 일정 기간 머리를 짜르지 않고 있다가 때가 되면 머리를 짜르며 자신들의 서원을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기억(약속)하는 것입니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율법에서의 자유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역설했던 그가 구약식의 서원을 계속해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까요? 십일조, 주일성수, 교회력 지키기 등등의 모든 것들이 나 개인의 신앙을 굳건하게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면 반드시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에 상당히 게으를 수 있는 사단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는 각각 개개인의 율법의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약속입니다. 약속하고, 회개하고 또 회복하고그러한 구체적인 개인의 율법(약속)의 훈련이 없이는 우리는 나태해지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로운 땅, 그리스 지역을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다시 향하기 직전에, 그는 그의 초심을 회복하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한 것입니다. 바울그는 정말 위대한 주님의 일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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