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 가슴에 말씀이 있는가?

사도행전 강해 (20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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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은 무엇인가에 집중하며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 집중력이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선 것입니다. 바울이라고 그의 개인적 삶이 없었겠습니까? 과거의 추억들과 보고 싶은 가족들, 현재의 하루를 살기 위한 노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 등등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일들이 우리의 것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몇 달의 생활을 하나로 묶어 자서전으로 정리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종이에 남길 수 있을까요?

바울의 사역의 중심은 말씀 선포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는 권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까이 부르다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훈육하고 용기를 주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사람들을 가까이 해서 무엇인가를 말함으로 가르치고 세워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올바른 길을 제시했으며, 그 길이 험난한 길이기에 용기를 북돋아 준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에 미쳤있었던 것이지요.

사도행전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에게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는 바울처럼 외국 선교를 다니며 말씀을 외쳐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 매일이라도 나와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그러한 식의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심장 말입니다. 바울은 사도적 특별한 사명을 받았기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바울의 그 사역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사도행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바울의 사역을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그 중심에는 말씀읕 통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지요.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기에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을 읽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가슴 한 복판에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으며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혹 그렇지 않다면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하는, 마치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던지 말이지요

 

2. 바울 일행은 안식일이 아닌 그 이튿날인 일요일(주일)에 예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성찬식을 거했고 말씀을 들었으며 그리고 함께 밥을 먹으며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누가의 의도적인 기록(모임의 때와 내용)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기독교 예배의 성경적 정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예배의 모습이나 시간적 흐름이 꽤 지난 20장 현재에 나오는 예배의 모습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배는 바울의 바쁜 여정 중에 있었기에 더욱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예배는 주님의 구속의 은헤를 기념하며 감사하고, 말씀의 강론이 있어야 하며, 반드시 성도들간의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도들의 모든 모임은 예배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찬양이든, 기도이든, 밥을 먹는 시간이든, 노는 시간이든구원과 말씀, 그리고 교제가 충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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