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행복, 코이노니아(교제)

사도행전 강해 (21장 1-17절)

1. 오늘 본문 1절에서 6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바울과 그의 친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라는 단어로 봐서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바울과 가까이 붙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밀레도를 떠나기 직전에, 너무나도 고맙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로에서도 많은 교인들이 바울과 함께 하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들 모두는 사도 바울을 아끼고 또 아꼈습니다. 자신들이 느끼는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직언까지(예루살렘에 가지 말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가슴으로 안아 주었고, 쓸쓸한 바다의 여행길을 함께 하였으며, 바울을 위해 모든 식구들과 함께 바다까지 나와서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절대로 외롭게 고립된 병사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전우가 많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누릴만한 행복 아니겠습니까? 어느 주석가가 내린 표현대로 교회의 행복은 HELP (Hug, Escort, Look out for, Pray)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제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함께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 교제입니다. 함께 하는 곳, 사랑이 있는 곳, 섬김과 양육이 있는 곳,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특권인 교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서로가 가슴으로 안고, 함께 있어 주고, 돌봐주며, 기도합시다.

 

2. 사도행전 21장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이 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울의 친구들 모두가 예루살렘에 바울이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심지어 선지자라고 하는 말씀 사역자인 아가보까지 아주 강하게 사도 바울을 설득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그들이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은 성령의 감동이 아닌 자신의 뜻이었을까요? 그것은 더욱이 아니지요. 바울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는 종종, 주님께서 주시는 감화감동이 분명히 있습니다. “,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닐거야!” 라는 식의, 나름대로의 확신 말입니다. 참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우리의 개인적인 확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 다를 때가 문제입니다. 한번 해결해 봅시다. 바울의 친구들이 느낀 성령의 감동이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야만 하는 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의 친구들은 바울이 당할 고난(성령의 감동)을 피하기를 원했던 것이고, 바울은 자신도 피하고 싶지만 뚫고 가야만(성령의 확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친구들은 포기한 것이지요(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더라). 개인의 생각과 주장이 너무나도 중요한 이 교회의 세대에 정말 심사숙고 해야 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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