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목요일 (요한일서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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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1)

태초 이전, 영원 전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인란 말씀의 주체요 내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즉 요한은 예수님과 자기 살아 생전에 함께 생활한 것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우리들은 예수님을 육신의 모습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그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우리들이 말씀을 통하여 그분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그분께 향한 믿음을 같은 표현으로 선포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훨씬 더 견고한 것 아닐까요?^^ 그런 고백이 우리의 심장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2.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2:16-17)

우리가 한 손으로 움켜 쥐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가 옵니다. 우리의 믿음을 수시로 힘들게 하였던 이 세상의 매력들이 반드시 끝날 때가 온단 말입니다. 그럴 때 남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과 그 말씀을 부여잡고 살던 성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시간의 시작과 끝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힘을 내고 열심히 사십시다. 우리에 주어질 장차의 미래는 영원한 것입니다. 아멘!

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3:23)

주님이 주신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랑입니다.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이 사랑은 분명히 주님의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랑을 우리가 공유하기 바라십니다. 가장 비겁하고 야비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혀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대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서는, 남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사랑은 평범하고 보통의 윤리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생명을 내어 놓는 사랑입니다. 

4.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4:13)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임하시므로 우리의 생각과 판단력이 하나님을 느끼게 하십니다. 아주 간단한 생각의 파편들 모두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지요. 성령 하나님의 감화감동으로 하루 하루를 복 되게 지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5.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5:14)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도의 말씀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것을 위해 기도한다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사역을 위해, 감사하기 위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이 필요하다면, 고난도 불사하는 그러한 기도 제목들 말입니다. 자신있는 처절한 기도의 제목이 우리의 원함 안에 충만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정말 멋 있는 교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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