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내야 할 제자도

우리가 믿고 따르는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세상을 창조하신 신이십니다. 그분을 구원의 주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진정한 제자의 길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자신의 먼 미래를 바라보며 선생을 따르는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향력 있는 선배의 뒤에 줄서기를 원하는 약삭 빠른 후배의 모습도 아닙니다. 승진을 위해 상사에게 싫은 기색 내보이지 않고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짐하는 그런 세상적 현실의 모습은 더욱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이상과 동선이 같은 유명인사를 따르는 그런 존경의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세상으로 우리가 완전히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초창기의 사역은 그야말로 인기왕성하였습니다. 수 많은 인파가 그분을 따랐고 심지어는 로마에 대항할 왕으로 모시려는 민중의거가 일어날뻔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나자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를 않았습니다. 함께 공동체적 생활을 하던 꽤 많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이상과 맞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가르침으로 인해 대부분이 그분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12제자 중, 급기야는 그분을 팔아 넘기는 배반자도 생기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던 3명의 제자들 조차 그분과 함께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겟세마네에서의 외로운 모습이셨습니다. 혹시 주님의 가르침 때문에 외로와 보셨습니까? 감사하십시오. 진정한 제자도는 외로움에서 시작해서 외로움에서 끝이 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한 답답함,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모습으로 인한 영적 열등감, 세상의 흐름에 역류하려는 성령충만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위로부터의 괴리감, 이 모두가 우리가 감사해야 할 주님의 외로움의 복사판의 모습입니다. 그 외로움 뒤에는 반드시 주님의 예비하신 기쁨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3명의 제자들에게 조차도 외면을 받으신채 외롭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본연의 감성이 여지없이 엄습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신 주님께서 죄 많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 방법은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더욱이 슬프셨고 힘드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죽음을 피하기를 원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당신의 인간적 모습의 한계를 드러내시는 솔직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분의 기도의 중심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에 있습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순종하듯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당신의 일을 완벽히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진정한 제자의 기도는 어려움에서의 탈출구가 아닙니다. 기도의 제자도는 피하는 길이 아니라 인내하는 길입니다. 이 기도를 마치신 후에 주님은 묵묵히 죽음의 길로 향햐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부활은 좋아하지만 죽음은 싫어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부활은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도는 죽기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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