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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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로부터 33절에 이르는 본문의 말씀은 매우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우선, 본문의 모든 가르침들은 5장 전반부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즉 빛의 자녀들답게 세상의 어두움을 폭로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첫째로 그렇게 빛의 자녀로 살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지를 조심하며 연구하라는 것이다. 둘째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요,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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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빛의 자녀의 모습은 착함과 의로움 그리고 진실함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양의 지면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더욱 권면한다. 그 첫째의 내용이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라” 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마치 지도에 나와 있는 데로 조심하여 찾을 것에 대한 은유적 명시를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지혜’는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 사실은 이말에 바울의 가르침의 특징이 있다. 시간의 모든 흐름이 죄악과 함께 흘러가는 데, 그 시간들을 살리라는 것이다. ‘아끼라’는 단어의 원래의 뜻이 ‘구원하다’이기 때문이다. 마치 주님께서 더러운 우리를 살리신 것 같이, 더러운 시간들의 흐름을 살려서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시간을 선용하여 부지런히 주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 바로 그것이 지혜이고 빛의 자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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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어리석다는 것은 감각이 없는 것을 말한다. 또한 뚜렷한 목적이 없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의 정확한 목적 의식을 갖는 것,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 바로 그것이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제목처럼,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훈련하고, 그리하여 결군엔 우리의 것으로 삼는 것이 우리 삶의 정체성이다. 주님의 뜻이 우리의 감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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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셋째로, 바울은 성령충만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에겐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을 순간적으로 잃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흥청망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반대의 예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술에 취해 추한 모습을 보이고 사는 사람이 이 설교를 들었다면 그야말로 술이 확 깨며 정신이 드는 이해가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성령충만의 삶은 우리만의 의지와 우리의 인간적 감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나도 모르게 따라 가는 것이다. 그 성령충만은, 교회의 거룩한 음악들을 통한 선포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께 향한 범사의 감사, 또한 사람들끼리의 피차의 복종의 삶을 책임진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성령충만의 결과는 찬양과 선포, 그리고 감사와 복종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개혁의 삶으로 성령충만을 증거해야 하며 주님의 형상 회복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감히 성령충만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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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부간의 복종과 사랑 이야기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르치기 위한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에 남편과 아내, 즉 한 가정의 가장 중요한 질서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 어느 한 쪽에만 강조를 둘 수 없는 완벽한 ‘하나’이다. 이 ‘하나’는 교회를 우선하고 교회를 초월한 하나님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부부의 경건은 그만큼 중요하고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가장 많이 되풀이 되어야할 교회의 질서, 부부관계이다.
적용해야 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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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짜피 지나갈 시간들, 정말 멋 있게 사용할 부지런한 계획을 세워보자. 시간이 없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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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회복이 가정의 행복에서 시작될 수 있도록 신혼을 회복할 용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