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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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내용이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에 자신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편지를 썼다. 왜일까?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지 안부를 묻고 전하는 편지라면 그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꼭 전해야 하는 편지이기에 썼을 것이다. 그만큼 편지의 내용은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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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2-6절까지 단 한 가지를 강조하며 권면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내용과 그 이유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과연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되는 것일까? 바울은 해답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 마음가짐의 태도가 중요하다. ‘겸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나 보다 더 훌륭하게 여기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그 겸손의 마음가짐은 분명한 행동을 낳게 한다. 그것이 바로 ‘온유’이다. 남과의 관계에서의 말과 행동이 부드럽고 신사적인 것을 말한다. 남이 더 높은 사람인데, 어찌 그에게 막말을 하고 함부로 대하겠는가? 겸손과 온유,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을 우아하게 만드는 기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오해는 하지 말자. 여기서 말하는 ‘오래 참고 용납하라’는 말씀은 거룩하지 못한 잘못된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참으며 받아들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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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절의 말씀은 계속해서 말씀한다. 하나가 되는 것은 평안을 말하며 성령의 명령이며 또한 성령의 일이다. 남을 높게 인정하며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령의 임재가 없으면 우리들은 연합을 경험할 수 없으며 유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됨의 연합의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은 ‘힘써 지키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참조/살전2:17, 딤후2:15, 벧후1:10). 우리는 성령의 팀사역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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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하나가 되야만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 바울은 그것을 4절과 5절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성령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한 분,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에 대한 부르심도 하나이다. 그러니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는 모든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주님께서 마지막 기도에서 이 제목을 놓고 축복 기도를 해주셨다(요1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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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에 꼭 필요한 선물(은사, 은혜)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은혜를 받은 자(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들을 교회의 리더로 세우신다. 그들의 사명은 이렇다. 첫째는 성도를 최고의(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둘째, 성도가 서로 종의 역할(봉사의 일)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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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리더들의 올바른 사역에 의해 건축되어 가고 있다면, 다음의 것들이 가능하다. 당연히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교회가 하나가 된다. 또한 그 믿음이 기초가 되어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친밀함을 누릴 수가 있다. 바로 그것이 완벽한 성도가 되는 복된 길이다. 또한 그것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를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헛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참된 것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퉁잇 돌 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서로 돕고 합력하여 봉사함으로 교회를 교회답게 하며 건축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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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1절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가 되기 위해, 사역자들의 올바른 가르침을 따라, 교회가 교회답게 건축되어 가는 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것이다. 이것은 긴 삶의 여정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부지런히 걸어야(행하여) 한다. 참으로 외로운 길을 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의 부르심의 교회이기에 걸어야 한다. 저울의 한 쪽 추가 주님의 부르심의 무게라면 또 한 쪽의 추는 우리의 하나됨의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의 모습이 무겁다면 교만이요, 우리의 모습이 가볍다면 게으름이다.
적용해야 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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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말하는 교회의 핵심의 내용과 내가 생각해 왔던 것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면 고칠 용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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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용납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