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교회를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정말 많이 듣는 교훈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 말씀의 중요함의 무게를 교회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란다. 그래서 그분은 죽으셨단다.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란다.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남이 나를 존귀히 여기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란다. 이게 바로 천국 아닌가?
나는 남을 더 귀하게 여기는데…. 바로 그 남이 내가 더 귀하단다.
바보들이 사는 세상… 천국이다… 이게 바로 교회다.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못난 우리를, 너무 귀하게 여기신 주님의 부르심… 그 부르심에 맞게 살라고 명하신다. 겸손과 온유로 하나가 되라신다.
남을 인정 못하고, 비아냥 거리며, 폄하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인정 못하고 비아냥 거리며, 평가절하해 버린다.
주님의 부르심이 거짓이다. 정말 그 거룩한 부르심에 감격하고 감사하다면, 바로 그 감사의 힘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내가 거짓인지, 주님의 부르심이 거짓인지… 심각하게 묵상해야 할 때이다.
부르심과 우리의 하나됨은 저울 추의 균형과 같아야 한다. 그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뜻이다.

Similar Posts

  • 찬송의 역사 이야기 1

    우리가 현재 부르고 있는 찬송은 어떻게 우리의 손에 오게 되었나?   과거의 믿음의 조상들은 어떠한 찬송을 불렀을까?   과연 어떠한 역사의 흐름을 통해 찬송의 전통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지를 보렵니다.    우선 성경에는 많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찬송‘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 번역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찬송 하다‘   ‘노래하다‘ ‘영광을돌리다‘ 등등 ,여러가지의 용어들이 사용되고있는 것을 볼…

  • 자신만만한 베트남 아줌마

    자주 가는 쌀국수 집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 싸다. 싼 것 치고는 맛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집에서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더운 여름에도 별로 시원하게 에어콘을 틀어 주지 않은 그 집을 자주 찾곤 한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다른 쌀국수 집을 찾았다. 값은 조금 비싸지만 집에서 멀지 않는 곳이었다. 주인 아줌마처럼…

  •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지 처음으로 서재를 옮겼다. 반지하에 있던 나의 골방을 큰 아들의 방으로 물려주고 잠을 자는 방을 서재로 꾸몄다. 12년 동안 나 홀로 썼던 방의 모든 것을 옮겼다. 책들을 포함해서 자질구레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조그마한 방에 그렇게도 많은 것들이 있었나 싶다. 그런데… 보지 않았던 책들, 사용하지 않았던 케이블, 단 한번도 참고조차 하지 않았던…

  • 찬양의 성경적 소고 (2)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장 16절) 1.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하였다. 초등학생 시절 때에 어른 예배에 들어가 가끔 특송을 불렀던 기억도 난다. 중고등부 시절 때에는 성가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테너였다. 남학생들끼리 모여 중창을 하고 후배들에게 노래까지 가르쳤다. 사실…

  • 익숙함을 넘어, 다시 주 앞에

    나는 요즘 무엇에 마음을 쏟고 있는가.말씀과 기도, 섬김과 배움의 자리에내 정신과 열망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가,아니면 익숙함 속에 몸만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내 영혼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는가.지쳐 있지는 않은지, 방향이 흐려지지 않았는지,말씀보다 여론과 상식을, 성실한 과정보다 즉각적 결과를더 쉽게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변화는 대개 소란스럽게 오지 않는다.작은 정리, 작은 결심, 작은 복귀에서 시작된다.다시 마음을 모으는…

One Comment

  1. 아멘. 예전에 이 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만약에 너의 친구 옆에 친구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 친구에게 함부러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근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데 어찌 너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많이 듣고 자란 말이라 그 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내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서 손해보기가 조금이라도 싫어서 야비하게 비열하게 살아가는 세상안에서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하다못해 남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서 이 세상 살아갈때 남을 위해 살아가다가 죽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때에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