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역사 이야기 (결론)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국가의 힘이 가장 없을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선비로 시작해서 머슴으로 살던 사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누군가로부터 지배를 받던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권력이 있고 물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사랑과 나누는 사랑이 있는 기독교가 부담스러운 종교였겠지만 , 무엇인가로부터 피해의식이 있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던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처럼 위로가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초기의 기독교에 대함 핍박이 어느정도는 사라지고 기독교라는 서양의 종교가 사회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하자, 지배층의 계급에서도 서서히 교인들이 나타나곤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평신도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예배와 찬송이 전달된 것입니다.

당시의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미국의 찬송은 미대륙에서 유행하고 있던 부흥성가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도아래 드려진 예배의 양식은 지극히 부흥사경회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에 한국에 전해진 예배와 찬송은 미국에서 유행하던 부흥회와 부흥성가 입니다. 미국 장로교 본 교단에 보고가 되어진 당시의 미국 선교사 의 보고서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 한국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감정적이다 . 엄숙한 예배 (worship)의 스타일로 모임을 가지면 싫어한다. 그들은 부흥회(revival meeting) 스타일을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 예배도 그러한 모습으로 모임을 갖는다.”

영어로 예배는 Worship 입니다. 그리고 부흥회와 같은 모임을 Revival Meeting 이라고 합니다. 당시 미국에 일어났던 대각성 부흥운동을 미국의 교회역사는 예배의 부흥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교회 역사가들은 미국을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한 특별한 훈련 기간 이었다고 단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러한 미국의 부흥회와 같은것을 예배와 혼돈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 한국 목사님들의 지도아래 예배의 양식이 많이 회복되었기는 하지만 , 여전히 부흥회때 임하는 소위 ‘은혜’를 예배시간에 갈구합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은 잘못된 개념의 예배를 시작 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은혜를 받기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송이 아니라 은혜를 체험하고 마음 문을 열기위해 찬송을 부릅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은혜를 달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기도를 들어달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사실은, 은혜를 체험한자들이 찬송을 부릅니다. 기도 응답의 체험이 있는 자들이 찬송을 부릅니다.

엄청나게도 발전한 문화는 전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특별하게 좋은 것이 있으면 국가를 초월하고 문화권을 초월해서 유행합니다 . 기독교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그의 민족과 나라를 초월해서 전 세계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버립니다. 미국의 베스트 셀러들은 출판된지 몇주가 지나지 않아 곧 전 세계로 번역 출판되어 퍼집니다. 미국의 성공한 교회의 사례들은 그해 안에 , 전 세계의 교회에 폭로됩니다. 결국은 각 국의 교회의 리더들을 모아 세미나를 하곤 하지요. 심지어 조직적인 학구 단체를 만들어 범세계적인 라인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유독 한국교회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예배회복’ , ‘찬송회복’ 이라는 말들 입니다. 이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잘못되어져 있기 때문에 ‘회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잘아는 이사야43장 21절 말씀은 우리에게 찬송이 어떤것임을 명확하게 잘 가르쳐 줍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먼저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피조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피조된 이유를 명확하게 선언 합니다.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로부터 칭찬받기를 원하십니다. 경배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애원하는 기도의 노래를 부르며 그것을 찬송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이사야43장 21절의 말씀이 말하는 찬송일까요?

어떤 분들은 이 찬송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여 ,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부르는 그 어떤 노래도 다 찬송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찬송은 그렇게 폭넓은 해석의 의미를 전혀 담고있지 않습니다. 찬송은 그저 찬송이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나 요란스럽게 찬송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어르신들은 “목사님 ! 참 걱정입니다. 젊은 아이들이 왜 저렇게 시끄러울 정도로 찬송을 하는지 알 수 가 없네요! 저것이 찬송인지 세상에서 부르는 유행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걱정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을 종종 듣습니다. 물론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이 세상의 음악의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 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약 드럼을 치는 친구가 마음속 깊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신나게 드럼을 치며 찬양을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그 형제를 비판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는 기도의 노래를 부르며 그것이 찬송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 입니다.

‘ 찬송의 회복’ 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혼자 있을때에 찬송을 부를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양들의 무리를 보살피며 혼자 외롭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한 다윗처럼. 감사할 현실적인 아무런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드리겠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처럼 . 우리는 개인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남들이 다 잠이든 밤 시간에 , 하루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나 홀로의 찬송을

불러 보십시요. 감사하는 자 들에게 감사할 일들을 더 베푸시는 것처럼 찬송하는 자들에게 찬송의 제목들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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