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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 에베소라는 도시 이름의 뜻이 ‘인내’인 것처럼 에베소 교인들은 그야말로 인내의 달인들이었다(계2:2). 바울 사도의 선교 전략의 요충지라 할만큼 그들은 탁월한 신학적 기반 아래 견고한 교회의 터를 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연약한 부분이 당연히 있었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식은 교회가 된 것이다(계2:4).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강조를 이 편지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편지를 씀에 있어서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많은 장점과 잘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단 한가지의 실수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 세대에, 우리 교회는 그러면 안 되겠다. 인정해야 할 것들을 남들에게서 찾는 훈련이 필요한 때이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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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진실로 기도의 역군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고된 훈련이기도 하다. 바로 남을 위한 ‘도고의 기도’이다(롬1:9, 빌1:3-4, 골1:3-4, 살전1:2-3). 그 기도의 내용이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바로 감사의 기도이다. 상상해 보라. 남을 위해 규칙적으로 하는 기도 자체가 어려운데, 간구의 내용이 아닌 감사의 내용으로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이러한 리더의 모습이 교회에서 사라져가는 이 세대를 위해 우리 모두가 정신차리고 집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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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도고의 기도 제목은 분명하고 매우 간단하다. 첫째,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둘째, 마음의 눈을 밝게 하소서. 이상 두 가지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과의 동행, 동거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분을 알아가는 포괄적 인생의 모든 여정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처럼, 그분의 사랑 안에 있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이다. 또한 마음의 눈을 밝혀 달라는 기도는 마음의 중심이 올바로 서 있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생각과 도덕적 판단의 중심이라는 유대인들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바울은 그 비유적 표현을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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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기도제목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소서’라는 기도제목이다. 이것을 의역하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말씀(계시)을 통한 분별력을 주옵소서”라는 뜻이 된다. 완벽한 기도의 제목이다. 이러한 역사가 임할 때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우리의 중심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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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이 열려질 때에(중심이 바로 설 때에), 다음 세가지의 것들을 알게 해달라는 바울의 기도는 평소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부끄럽게 한다. 1)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소서 2)성도의 기업의 영광을 알게 하소서 3)주님이 능력을 알게 하소서. 바울의 이러한 기도 제목은 우리의 도고 기도의 방향을 바로 잡게 해준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도의 응답이야말로 세상을 이기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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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그 능력이 교회를 붙들고 있음을 완벽하게 설교한다.
적용해야 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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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 남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만약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칭찬할 것이 그분에게 단 한개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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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있나를 우선 생각해 보자. 있다면 그 기도제목을 한번 나열해 보자. 우선순위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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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울의 도고 기도 제목을 통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남들을 사랑하는 기도이고 남들을 위한 정확한 기도인데, 왠지 무게 중심이 주님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는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모든 것의 무게가 정해진다. 그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다. 모든 교회가 이것을 놓치는 이 때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핵심이다.
교회 홈피가 새롭게 디자인되고있네요. 기분이 새롭습니다. 공사가 다 끝난 후에는 어떻게 변할까 기대가 되고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무게중심이 주님에게 있다는 것에 대하여 공감하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교제 위에 주님이 빠진다면 여러모로 지금과는 다른 관계로 변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공동체에 주님이 주인으로 계시기때문에 주님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세워주는 귀한 모습을 훈련받게 되는 것이겠지요. 참으로 귀한 주님이시고 또한 귀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