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의 기도에 관한 글 (죠 레아) 나눕니다. 

 

나는 그날 마트에서 한 손으로는 카트를 끌고 다른 쪽으로는 18개월 된 딸을 안은 채, 비어 있는 계산대를 찾고 있었다. 아침부터 아이에게 미열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마트에서도 딸을 카트에 앉히는 대신 안고서 장을 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상체를 꼿꼿이 세우더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호흡 곤란이 온 것처럼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했고, 구역질을 시작했으며, 몸을 뒤로 굽혔다가 다시 내 쪽으로 납작하게 기대왔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입술이 둥그런 모양으로 굳어짐과 그 주위가 그 주위가 한눈에 보기에도 알아챌 정도로 파래졌다. 십 분 가량 아이는 멍한 상태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섭고 떨리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일단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가 질식한 것은 아닌지 확인한 후 직원에게 119에 연결해 줄 것을 긴급하게 요청했다. 곧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천만다행히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며 날 안심시켜 주었다. 원인은 갑작스런 고열에 의한 열성 발작이었다. 십오 분쯤 지나자 딸 아이는 나를 알아보고 물을 달라고 했고, 이내 자고 싶어 했다. 다음날까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그날의 일은 그렇게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구급차를 기다리던 그 순간, 경련이 너무 심해 아이가 곧 의식을 잃을 처럼 보였던 그 무시무시하던 때,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탄식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날의 고통은 짧았지만,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처절한 고통과 슬픔을 겪으며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또한 지인 중에 장애가 있는 이들이 있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긴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지, 또한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의 기도를, 탄식에 가까운 기도마저 모두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로마서 8장은 이러한 진리를 잘 보여준다.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중략]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3, 26-27).

바울이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언어적으로 잘 정제된 기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적나라한 탄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러한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기도에 관한 바울의 이와 같은 고백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세 가지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1. 탄식의 기도를 들으신다

누구의 기도이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이 우리의 탄식하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실로 놀라고도 감사한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면들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로 붐비거나 시끄러운 곳이라고 해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특별히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방이 행복한지 슬픈지, 아니면 신난 상태인지 지루해 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탄식의 기도, 일체의 생각과 바람을 다 ‘들으신다.’ 자신조차도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지도 못한 내 영혼의 몸부림까지도 그분은 아신다. 

너무나 큰 고통과 고뇌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분을 송축하기는 커녕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은 탄식의 기도를 들으신다. 바울이 말한 “마음을 살피시는 이”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때조차 언제나 그 자녀의 기도를 들으신다. 

2. 탄식의 기도를 이해하신다

하나님은 아무 말 못하는 기도까지도 들으신다. 다윗 역시,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4)라고 고백한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며,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들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시는 분이다. 다윗은 가슴을 저미는 애가인 시편 38편에서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9절)라고 읊조린다. 이는 곧 다윗이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8절)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시며, 또한 그가 이 사실을 믿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하늘이 선포하는 그분의 영광, 그리고 밤과 낮이 하는 “말”을 들으시는 분이시므로(시 19:1-3), 그분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시고도 남는다. 

로마서 8장이 묘사하는 “속으로 탄식하는”(롬 8:23) 모습은 피조물이 지닌 슬픈 단면이자 한계이다. 고통이 너무도 깊어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롬 8:26),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 8:27). 성령 하나님은 마음 속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또한 그 고통을 보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이처럼 로마서 8장에서의 바울은,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에 살았던 다윗의 고백보다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는 딸을 안고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바울이 말한 바로 그 성령 하나님이 애타는 나를 깊이 이해하고 또 그런 나를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계셨다.  

3. 탄식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신다

언어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지을 뿐 아니라, 아이가 성인이 됨과 함께 발달하는 일종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세상을 밝히며, 또한 각자의 생각과 소망을 표현한다. 우리 개신교인들은 중요한 영적 진리를 논함에 있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늘 강조하곤 했다. 또한 개신교는 믿음에 관한 핵심 진리를 누구라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 위에 세워졌다. 다시 말해 개신교는 언어를 통한 진리의 전달을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기도까지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신다. 그리고 그 탄식을 알고, 이해하며, 귀하게 보시는 주님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은혜, 그리고 사랑을 깨닫는다. 로마서 8장에서 성부 하나님은 바울을 향한 성령 하나님의 탄식을 기도로 받으신다. 우리의 탄식마저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다윗 역시 하나님이 자신의 “눈물”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한다(시 56:8). 그날 딸을 위해 울던 나의 기도는 비록 불완전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고통이 너무 커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의 탄식, 슬픔에 너무도 짓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들의 신음,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 당하는 아픈 사람들의 갈망 역시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으신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귀하게 여겨진다. 우리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기도라 해도 말이다. 

Similar Posts

  • 1월 26일 토요일

    마태복음 6장 19-34절 19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 6월 26일 토요일

    귀한 글 (팀 세비지) 나눕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나름의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다. 운전자에게 사각지대는 그의 눈으로 볼 수 없어 사고를 일으키기 쉬운 곳이다. 크리스천들에게도 그들이 보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사각지대가 있다. 그들은 그로 인해 하나님께 충분히 쓰임받지 못하며 삶의 기쁨도 적어진다. 목회를 하면서, 그 맹점을 보고 또 보았다. 나 자신 안에서도 그것을 보았다. 크리스천들이…

  • 5월 7일 화요일

    역대상 9장 35절 – 10장 14절 35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주하였으니 그의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라 36그의 맏아들은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넬과 나답과 37그돌과 아히오와 스가랴와 미글롯이며 38미글롯은 시므암을 낳았으니 그들은 그들의 친족들과 더불어 마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39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40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41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이며 42아하스는 야라를 낳고 야라는 알레멧과 아스마웻과 시므리를 낳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고 43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르바야요 그의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의 아들은 아셀이며…

  • 12월 24일 목요일

    베드로후서 2장 10-22절   10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불의의…

  •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 예레미야 23장 5-6절

    5월 16일 금요일 / 예레미야 23장 5-6절 5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또는 공의로우심)을 이해하려고 할 때, 보응(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 12월 3일 목요일 (요한일서 1-5장)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1) 태초 이전, 영원 전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인란 말씀의 주체요 내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즉 요한은 예수님과 자기 살아 생전에 함께 생활한 것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우리들은 예수님을 육신의 모습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