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에 관한 귀한 글 (존 블룸) 나눕니다.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나는 중산층 미국인이다. 이 말의 의미는, 지구에 사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부유함을 내가 누린다는 것인데,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이 부요함의 수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앞으로 훨씬 더 적어질 것이다. 전 세계적인 면에서나 또 역사적인 면에서, 내가 속한 상대적 환경은 이러하다. 
부자 청년에 대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그가 풍요로운 형태의 종교적, 문화적 환경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자신이 영적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그 청년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공관복음서가 그리는 그에 관한 짧은 묘사와 또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그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건대, 이 부자 청년은 야고보서 5장 4절부터 6절에 등장하는 거만한 부유한 억압자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이 청년 주변의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누리는 풍요야말로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청년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은 채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을 정도로(막 10:17) 영적으로 열심이었다. 그는 경건의 모든 모양을 지키고 있었다. 예수님이 열거한 계명을 어린 시절부터 모두 지켰다고(또는 그랬다고 혼자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백했다(막 10:19-20). 또한 그는 신실했다. 마가가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막 10:21)라고 기록했을 정도이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그를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이 부족했다.
영적 열심, 신실함,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함에서 그는 주변의 그 누구보다 뛰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면모들이 과연 믿음의 모습일까? 아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믿음은 ‘신뢰’로 드러나고, 신뢰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신뢰하는 법이다.
네가 무엇을 믿는지 보여다오
열정이 넘치고 신실한 이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사랑은 그가 섬기는 진짜 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네가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막 10:21).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믿는 진짜 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초대를 뒤로 하고 떠나갔다. 매우 ‘슬퍼하면서.’ 그는 왜 예수님의 초대를 저버렸을까? 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을까? 그 답은 바로 청년에게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다(막 10:22). 예수님은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엄중한 판단을 내리셨다: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막 10:23–25).
부자 청년이 진짜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을 때, 그는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믿음의 대상으로 부와 소유를 선택했다. 즉 그의 부요함이 곧 그의 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믿는 풍요의 신은 이 청년이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당황스럽지 않은가? 예수님의 판단을 들은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막 10:26). 전세계적인 빈곤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큰 풍요 속에 사는 중산층으로서, 나는 이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인 듯하여 무척 당황스럽다. 스스로의 믿음에 관해서 나는 자가 진단이 아닌(고전 4:3), 오로지 하나님의 진단을 신뢰할 뿐이다(고전 4:4). 진짜 믿음의 여부는 결정적인 순간에만 드러나기 때문에(벧전 1:6-7; 약1:2-4; 고후 13:5), 우리는 시편 속의 청년처럼 예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유함을 버리라고 하지 않고 대신 부요함 속에서 신실하게 살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부요함 속의 믿음이 필요하다.
부요함 속의 믿음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선택권이 있다면, 우리 중 대부분은 부요함 속의 믿음을 원하지 가난함 속의 믿음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이는 우리가 아직까지 물질적 번영이 가진 위험한 본질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을 감당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던 바울은 말은 진담이었다.
‘부요함'(번영)과 ‘필요함'(궁핍)은 전혀 다른 환경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이 두 가지 환경을 제대로 다루는 믿음이 필요하다. 완전하게 다른 이 두 가지 환경에서 쓰이는 믿음 근육(faith muscles)은 절대 동일하지 않다. 궁핍할 때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근육이 필요하다. 반면, 부요함 속에서는 풍요로운 물질적 안전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근육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궁핍을 두려워하지 번영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부요할 때보다 궁핍할 때 믿음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다. 궁핍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핍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그분을 더욱 찾는 믿음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요할 때 발휘하는 믿음은 다르다. 영적이고 또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풍요로울 때 우리는 훨씬 더 속기 쉽다. 이 때는 많은 유혹 앞에서도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진정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소중하게 섬기는 믿음이 필요하다. 물질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는 위기감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급이 갈급하지 않기 마련이다. 풍요는 나의 손에 많은 선택지가 있음을 의미하고, 또 갖가지 다양한 분야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돈과 시간을 쓸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우리의 믿음 생활에 너무도 위험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힘들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스스로를 시험해 보라. 당신이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찾았던 때가 언제인가? 궁핍할 때인가 아니면 부요할 때인가?
하나님을 선택할 때
물질적인 안정을 갈구하는 것은 쉬울지라도 이미 누리던 부요함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풍요까지 버리려는 사람에게는 조금은 다른 종류의 믿음 근육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유일한 선택지일 때보다 내가 가진 선택지가 많을 때에, 우리에게는 훨씬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치 때문에 추수할 대상은 많은데 일꾼이 적은 것이다(눅 10:2). 풍요로운 하나님 나라를 더 깊이 경험하기 위하여 세상의 궁핍함을 맛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조지 뮬러(George Muller)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와 같은 성도가 보여준 믿음이 위대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아서 사역을 감당하고, 힘든 상황을 피할 선택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을 맞은 게 전혀 아니었다. 그들이 이렇게 행한 이유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분이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히 11:6).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부요함과 궁핍함 모두를 다루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 비밀은 그들의 보물인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상대적 부요 속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청년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회 역사가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교회에 돈이 많아질수록 교회는 타락하고 분별력을 잃으며,죄에 대해 점점 더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갈급함이 점점 더 식어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 더 힘들어진 세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희망없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로 뛰어가자.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하시는 그 분의 힘에 의지하자. 그리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간구하자.
주여,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오로지 당신만을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내가 가진 경제적인 안정을 잃더라도 당신의 나라를 얻게 하시고, 유혹에 휩쓸려 영혼을 잃는 우를 범치 않게 하소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생명, 가족, 시간, 돈, 소유물, 그리고 미래까지 주님이 원하는 곳에 제가 이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비록 다 잃을지라도 그리 하겠습니다(빌 3:8). 주님, 지금 내게 오셔서 내 마음을 살피시고 나의 믿음을 시험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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