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역자 (테사 톰슨) 귀한 간증을 통한 권면의 글 나눕니다. 

 

거의 스무 명의 대학생이 우리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게 제자리를 잡아간다고 느꼈다. 집은 깨끗했고 슬로우 쿠커에는 부드러운 바비큐 치킨이 가득했으며, 커피를 끓일 준비도 다 끝나 있었다. 남편이 청빙을 받아 최근 이사한 우리는 새로 부임한 교회에 충실하게 출석하는 인근 대학의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주일 오후, 정신없는 부엌을 지날 때, 내 침착함은 돌연 고통스럽게 상기되는 나의 나약함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내가 귀머거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예의 바른 한 청년이 더러운 접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간단한 질문을 했을 때, 나는 바로 옆에서 커피를 따르고 있던 여자 학생에게 지금 저 청년이 뭐라고 하는지를 물어야만 하는 어색한 상황을 만들고야 말았다. 그 여자 학생의 입술을 읽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휴우~ 주님, 내가 귀머거리라는 사실을 결코 오래 잊고 있도록 그냥 놔두는 법이 없으시군요.’ 몇 분 후, 우리는 모두 거실로 모였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자막으로 나오는 그들의 말을 읽었다. 이런 첨단 기술에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특별하게 선택한 이 육체의 가시에 별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이 신경계의 가시가 내 육체에 머문 지 거의 이십 년이 되어 간다. 나는 이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청하지 않았다. 아마도 삼백 번 정도 기도했을 거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시를 없애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이 육체적인 약점이 이 세상에서 사는 내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색한 대화, 제한된 사역 능력, 조용한 교회 예배는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선택하신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연약해지는 것에 대해 배울 것이 많지만, 이런 저런 일을 통해 나는 적어도 한 가지를 제대로 배웠다. 그리스도인의 연약함이 가져다주는 것은 비참함 아니면 성숙이라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연약함은 좌절을 낳거나 또는 열매를 맺는다.

사도 바울도 이 점에 기꺼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여기서 말하는 고난은 무엇이었을까? 투옥, 구타, 난파, 잠 못 이루는 밤, 굶주림, 끊임없는 위험, 그리고 교회의 건강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등등, 단지 몇 가지만 들어도 이렇게 많을 정도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에게 육체의 가시까지 주어서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바울은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가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만 봐서는 참 비참한 삶이다. 그런데도 바울이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왜 만족하고 항상 기뻐할까? 바울은 삶 속에 그런 약점과 고난이 없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연약함과 고난이 그를 날마다 더 그리스도의 충분함을 바라보도록 강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든 고통은 바울을 배경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가 중앙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 모든 고통은 하나님 왕국에 필요한 열매 맺는 삶을 위해 지혜와 힘과 은혜를 간절히 원하는 바울로 하여금 날마다 예수님의 발 앞에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바울의 연약함은 비참이 아니라 성숙에 이르는 도구였다. 바울은 성화되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약함”에 대해 말할 때, 그건 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기독교인 안에 내주하는 죄의 현실 때문에 죄는 참으로 언제나 우리의 궁극적인 약점이 된다. 즉,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가 주는 연약함도 우리가 그 죄를 죽일 때 성숙을 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실 아직 영화롭게 되지 않은 몸으로 이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 매일 많은 연약함을 경험하면서 산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것들은 우리를 나약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환경과 상황, 그리고 경험과 상처이다. 우리에게 충분한 힘이 있다면, 아마도 제거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주일 마다 모이는 지역 교회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이러한 약점들을 목격한다. 

어린 자녀를 둔 피곤한 어머니는 집 밖에서 사역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나이든 성도는 몸과 마음이 점점 더 쇠퇴해감을 느끼고, 조금씩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대학생은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고통받는다. 이십 대 미혼인 어느 여성은 함께 일할 남편이 없는 사실에 어려움을 느끼며 결혼을 갈망하고 있다. 이런 식의 목록은 수도 없다. 만성 통증, 교육 부족, 재정적 압박, 끝없는 시련으로 인한 낙망,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면서 느끼는 피로, 리더십 부족, 실업, 실명, 청각 장애 또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 등등.

이러한 약점 때문에 좌절하며 우리는 그 연약함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휘해야 할 유용성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각하기 쉽다. 돈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성격이 좀 달랐더라면, 조그만 더 건강했더라면,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날 좀 더 잘 이해시켰더라면, 이런 약함만 없었더라면, 등등. 

그러나 바울의 삶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포용한다. 약점은 그의 일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 매일 그의 거룩함을 돕는 조력자이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이 그를 통해 역사하고, 그의 유한한 수고를 결실 있게 만들고 있음을 상기한다. 거기에 더해서, 너무도 자주 표면 위로 올라오는 교만, 비통함, 탐욕, 게으름, 짜증과 같은 죄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약점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연약함 때문에 바울이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을 하는 데 주저한 적이 없다. 약점은 결코 그를 수동적이거나 게으르게 만들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전 15:10). 그래서 바울은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그의 열매가 드러내는 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그가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을 드러냈는가이다.

하나님을 위대하게 드러낸 것이 무엇인가? 연약함은 아니다. 연약함 그 자체는 결코 거룩한 것도 아니고 또 열매도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약점에 대처했기에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좌절하며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또는 약점 때문에 침체되는 사역을 생각하며 절망하는 대신, 바울은 그의 눈을 육신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권능을 가지고 영광 중에 부활해서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구주를 바라보았다. 바울이 이 구세주를 보았을 때, 자신은 단지 그 영광을 보고 찬양할 수 있는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을 더 많이 바라볼수록 바울은 예수님을 닮아갔고, 그 결과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고후 3:18)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그의 연약함은 점점 더 큰 열매를 맺었다. 왜냐하면 나날이 성장하는 성숙함에 따라 그의 삶의 목표는 이제 “바울이 아니라 바울을 통한 그리스도가 드러나심이요, 바울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함이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연약함은 어렵다. 그 무게를 느낄 때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며”(고후 5:2), 타락한 몸과 세상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신음한다. 만약에 이런 신음이 우리로 하여금 오로지 내면만을 바라보게 하고 그 결과 우리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이 우리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한탄하도록만 만든다면, 그렇다. 연약함은 우리로 하여금 성숙한 열매를 맺는 데 방해가 될 것이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죄와 비참함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탄식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성숙을 가져오는 탄식이다. 

연약함 가운데 나오는 나의 탄식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동시에 나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일과 예수님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보여 달라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이끄는 탄식일 수도 있다. 

연약함 가운데 나오는 나의 탄식이 교만에 기인한 불안함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동시에 내 마음이 안정을 찾는 곳은 사람의 칭찬이 아닌 그리스도의 미소이기에,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이끄는 탄식일 수도 있다. 

연약함 가운데 나오는 나의 탄식이 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느끼는 비통함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동시에 그리스도와 연합했기에 그가 아낌없이 베푸시는 기쁨의 새로운 깊이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탄식일 수도 있다. 

연약함 가운데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의 연약함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능을 찬양할 수 있는 장성함에 이르도록 간절히 기도하라.

Similar Posts

  • 3월 25일

    요한복음 12장 9-19절 9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2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13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15이는…

  • 11월 19일 토요일

      출애굽기 33장 12-18절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 1월 21일 월요일

    마태복음 5장 1-12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 7월 17일 토요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성도로서의 합당한 삶의 모습 일체를 말한다. 곧 순종의 삶이요,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이요,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런 삶을 살다가 낙심하지 말라 하는가.  눈에 보이는 상급이 주어지지 않을…

  • 9월 17일 화요일

    여호수아 9장 16-27절 16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17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8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19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20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 5월 15일 토요일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남편 아담으로부터 “먹지 말라 반드시 죽는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하와는 이 말씀을 많이 생각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남편 아담하고도 많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음도 분명 짐작할 수 있다. 그 어떤 자극에도…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