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신뢰할 것에 대한 글 (로버트 커틸로) 나눕니다. 

 

여러 달 동안 다리에 통증을 느끼던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외국에서 온 그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이곳에 한동안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할머니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가족들은 결국 그분을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의사는 통증의 원인을 알기 위해 CT를 찍자고 했고, 다행히 할머니의 척추와 다리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그 CT 사진은 몸의 전혀 다른 부분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알갱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은 종양이었는데, 그 크기가 작고 양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단서에 씌여진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결국 할머니는 세 가지 추가 조사를 받았고 고통스러운 조직 검사까지 마쳤다. 다행히 이 모든 검사가 끝난 후에, 종양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경우, 할머니는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기 위하여 수백 만원을 소비했을 뿐만 아니라,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을 찾은 원래의 이유였던 통증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했다.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환자의 실제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환자에게 발생하고 있는 다리의 지속적인 통증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이날의 최첨단 의료체계에 대하여 결국 화를 내시고 말았다. “우리나라로 돌아갈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이 검사 결과만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요.”

오늘날의 선진 의학 기술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이는 분명히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 그 기술을 과하게 사용하려는 경향을 절제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다만 세상이 험하고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한 의학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고난의 극복을 위하여 인간의 생각과 도구에 맹목적으로 의존하고는 한다. 만약 그보다 더 강력한 것에 의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비상사태 인정하기

우리는 이제 에덴동산 밖에 있다. 이미 금단의 열매를 먹어 버렸다. 다시는 돌아갈 길이 없다. 결백하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기에는 우리가 너무 많이 떠나왔다. 세상은 무섭고 낯설며, 혼돈을 통제하려 할수록 우리는 그 혼란을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창세기 3장 이후의 세계는 우리를 점점 더 큰 불안으로 몰아간다.

창세기 후반부는 요셉의 시기심 많은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팔아넘긴 이야기로 이어진다. 요셉을 가까이 두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종으로 팔아넘기는 것이 좋다고 여겼던 형들은 이제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아버지의 슬픔을 야기했고, 그 문제는 너무나 커졌다. 성경은 아버지의 슬픔에 대하여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창 37:35). 아버지 야곱의 슬픔은 그의 활력을 점차 앗아갔다.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받게 되고, 개선하려는 의지와 판단 능력의 약함으로 실패하며, 아픔과 슬픔이 지속될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도 앞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대본의 감독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 대본의 한 부분만을 알고 있는 작은 배우일 뿐이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세상의 마지막 밤’(The World’s Last Night)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그 연극의 내용을 모른다. 우리가 1막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4막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연인지 조연인지도 모른다. 오직 감독만이 그 대본의 처음과 끝을 알고 있다. 우리가 비록 어느 한 가지가 전체 극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확신하며 매달릴지라도, 사실 우리는 그것이 가지는 정확한 의미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다. 그리고 감독은 우리가 모른다는 그 사실까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연극이 다 끝나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 각자가 연기한 부분에서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따라서 배우인 우리는 감독의 인도에 따라 잘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감독이 그 어떠한 엄청난 사건에도 영향받는 분이 아니고, 그분이 작성한 대본은 절대 흔들리지 않으며, 내 눈에 보기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까지도 이미 그분이 작성한 대본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연기’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소식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하나님이 인간을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 불안한 자유를 원했던 것이라면, 우리는 정확하게 원하는 그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 속 불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반복되듯이, 다행히 하나님은 멈추지 않고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그리고 창세기는 요셉이 종이 된 일이라든가 그 아버지가 슬퍼하는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의 형들은 그 애굽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들 요셉과 다시 만났으며 평화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 동생 요셉을 종으로 팔았던 형들은 이제 권력을 가진 동생 앞에 서게 되고, 그들이 한 일에 대하여 요셉이 ‘악한’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주가 제멋대로 돌아간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선악에 대한 개인의 지식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대본의 감독이 극본의 처음과 끝을 완전히 알고 있고, 배우들의 실수까지도 받아들여 사용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다. 창세기가 끝날 즈음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한 말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자 기억해야 할 메시지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하나님이 세상과 내 삶에 여전히 개입하시며 불행마저도 선이 될 수 있도록 더 큰 계획으로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지금의 관점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어떤 나쁜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선으로 바꿀 능력과 의도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최첨단 의료 기술에 모든 기대를 걸기보다는 그보다 더 큰 기대와 소망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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