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 (두려움)에 관한 글 (크리스티나 폭스) 나눕니다 

 

그일은 순식간에 발생한다. 짧은 생각과 속삭임,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엉켜버린 나 자신.

남편은 앞으로 3개월 동안은 출장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더 많을 거라고 말한다. 달력 속 날짜를 보고 내 머리는 계산을 한다. 그리고 특히 가장 긴 출장 일정에 초점을 맞출 때면, 온몸이 짓눌리는 것과 같은 무게를 느낀다. 마치 1마일을 달린 것처럼 힘이 빠지고 지치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너무 길어, 남편 없는 동안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려면, 이건 정말 보통 힘든 게 아닐 거야.”

“남편이 없을 때 애들한테 힘든 일이 생기면 어쩌지?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만약에….”

“난 할 수 없는데…”

“너무 힘들 거야.”

어느새 부담감에 압도되어 초조해진 나는 다가올 미래가 무서워진다. 

두려움의 무게

남편이 출장 가고 없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놓지 않는다. 마치 발목에 묶인 시멘트 덩어리처럼 내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물론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냥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 경우에 내 마음은 더 빨리 요동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다시 나 자신을 정상으로 되돌이키려면 여간 많은 노력이 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자신을 잘 안다고 해서 이런 식의 익숙한 두려움의 패턴과 쉽게 단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멍하니 서 있는 동안 내 마음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요동친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지금 내 마음이 마구 제멋대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에는 실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가 인생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온 패턴이다.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나의 두려운 반응은 호흡처럼 자동적이다. 나는 이 두려움을 가장 편한 옷처럼 자주 껴입는다. 너무 자주 입어서 내게는 마치 아늑한 담요처럼 내 몸에 꼭 맞게 된, 대학 시절 부드러운 스웨터 같은 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어떻게 보면, 사실 두려움은 편안하고 정상적이며 또 친숙한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이 신뢰의 반대라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두려움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원수, 곧 나를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자다. 두려움은 내게 거짓말을 한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도록 유혹한다. 바로 앞의 현실을 볼 수 없도록 안갯속으로 나를 숨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 즉 그분이 항상 나와 함께하신다는 그 진리를 믿기 어렵게 만든다.

두려움과 망각

두려움은 건망증을 먹고 자란다. 또한 두려움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가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벧후 1:9) 망각하는 우리의 영적 기억 상실 위에서 번성한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이 베푸신 신실하심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잊어버린다.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외롭고 길을 잃고, 또한 무력하고 두려움에 떤다. 

시편 저자들은 종종 두려움을 느꼈다. 시편 31편에서 다윗은 원수들이 가하는 위협 때문에 괴로워한다. 도움을 청하는 다윗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보라.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시 31:2, 9–10).

그러나 다윗은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이 과거에 자신에게 베푸신 그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시 31:21–22).

그래서 이 시편은 두려움으로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했기에 희망으로 끝난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시 31: 23–24).

시편 31편은 시편의 핵심 주제, 즉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형제자매가 서로를 향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편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그의 구원, 그의 공의, 그의 자비에 대해 노래한다. 시편 저자는 종종 두려워하는 그분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들려주며,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한 위대한 구원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구속 역사의 다른 한편에 사는 우리에게도 출애굽이 있다.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다.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출애굽을 거듭 되새겨야 한다. 두려움에 맞서는 무기로 우리는 복음을 내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억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누리는 안전함의 평안은 결코 우리의 기억력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만 하나님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구해주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저쪽 옆에 가만히 서 계시다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과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신실하심을 기억할 때에만 우리에게 달려오시는 게 아니다.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우리 삶에서 움직이시게 하는 게 아니다. 그 대신, 기억은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고 이미 존재하는 참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다. 기억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망하도록 힘을 준다. 

그렇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억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그리스도에게서 시선을 떼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을 바라볼 때가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스펄전은 이렇게 고백했다. 

오! 내 안전함의 근거는 내가 하나님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그분의 언약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언약이 나를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내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넘치지만, 나와 그의 택하신 모든 자들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언약을 기억해야 하며, 오로지 신령한 은혜의 힘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전함의 경첩은 우리의 기억 여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는 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는 데 달려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마주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하라.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또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고 평화를 누리라.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두려움에 쌓인 모든 영혼을 향한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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