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예배에 관한 귀한 글 (제이슨 헬로풀로스) 나눕니다.
얼마 전, 미국 교회 순방을 위해 초청되었던 어느 아프리카의 목회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를 초청한 교회의 대표가 일정을 마친 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소감을 물었다. 이에 그는 “미국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미국 교회는 기도에 관한 한 유독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특히 주일예배와 같은 공예배에서 이 특징이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예배에 약 3분 정도의 대표 기도를 포함시키는 교회도 찾기가 쉽지 않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일까? 예수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21:13)라고 말씀하셨다.
독립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정서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미적지근한 신앙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내가 이 글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은, 공예배 시 기도의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한 교회들은 이제라도 회개하고 기도의 회복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회복하라
교회에서 공동 기도를 시행하거나 증진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모든 예배에 기도를 필수 순서로 삼는 것이다. 몇 곡의 찬양과 이어지는 성경 봉독만으로 예배를 마친다면, 신앙의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찬양을 기도의 한 형태로 본다고 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만약 예배에 공동체를 대표할 공식적인 기도가 없다면, 성도들이 기도를 배우고 직접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러 차례의 세미나를 통해 가정 예배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권면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본질적인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나고 난 후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하나같이 난감한 표정으로 다가와 이롷게 말한다. “만약 기도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크리스천이 기도할 줄 모르는 감기에 걸린 것만 같다. 나는 공예배 시간에 기도가 부족할 때, 독감이 번지듯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기도를 함으로써 기도를 가르치라
공예배 시간에 기도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때 기도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기도의 구조, 어조, 어휘, 태도, 강조하는 항목들과 적용되는 말씀들을 깨닫게 된다. 즉, 기도는 가르치는 만큼 배울 수 있다.
매주일의 예배에서 대표 기도 시간을 갖는 것은 성도들에게 단 시간에 기도를 교육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하지만 대표 기도의 이유가 꼭 교육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그분의 자녀이다. 예배에서의 대표 기도를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공동체의 필요와 갈망을 간구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자기 혼자 힘으로는 신앙적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은 지체들과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기도는 모든 성도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공예배를 위해 여러 형태의 기도를 시도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교회를 위한 일반적인 대표 기도의 형태로 기원하는 기도, 경배하는 기도, 죄를 고백하는 기도, (목회나 중보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 설교를 위한 기도, 그리고 감사의 기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간구하는 기도는 좀 더 긴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다. 물론 너무 긴 기도는 회중을 깜빡 졸게 만들 수도 있지만 회중이 집중할 수 있을 만큼 길면서도 잘 구성된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즉흥적이기보다는 미리 작성되거나 준비된 기도가 때때로 필요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오늘날의 목사, 또는 장로는 사전에 따로 준비하지 않고 교인들의 마음을 감화하고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는 긴 기도를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기도의 방법으로, 모든 성도가 함께 준비된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는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기적인 기도회를 열라
교회에서 공기도가 고취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정기적인 기도회를 여는 것이다. 기도회는 말 그대로 ‘기도’가 주된 모임이다. 그러나 나는 기도 대신 가르침, 설교, 또는 찬양으로 가득한 ‘기도회’들을 많이 보았다. 기도회는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 무릎을 꿇고 공통의 제목을 위해 간구하는 자리이다. 기도회의 횟수는 일주일에 한번, 혹은 최소 한달에 한번 정도가 좋다.
이때 기도회의 순서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도회 도중 회중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변화의 장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총 1시간이 기도회를 위한 시간이라면, 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편이 좋다. 그리고 서로 다른 기도의 방법과 유형, 주제들을 사용해 보는 것이다. 기도를 위한 방법이나 유형, 주제의 조합은 무한하고 다양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기도회에서 벗어나, 참여하고 싶고 진짜 기도하고 싶은 ‘기도회’를 만들 수 있다.
공예배에서의 기도가 성숙될 때 성도들 개개인의 기도가 성장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기도의 훈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기회이다. 특별히 나는 복음주의 교회가 기도에 대해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추구하길 바란다. 성도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