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13-16절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저주를 다 빼면, 그 삶에는 축복만 남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저주를 감당하신 이유가 바로 그렇다. 본 문맥을 시작하며, 바울은 율법과 저주라는 주제를 연결시켰다. 그리고 이제 그 시선은 저주를 감당하신 그리스도에게로 옮겨간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지셨다. 바울은 이것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구약의 예언을 우리에게 다시 언급한다. 저주 아래 있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을 찾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저주를 피할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명확히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에게 미쳤다고 언급한다.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안에서 ‘성령의 약속을’ 함께 받을 수 있게 된다.
저주에서 출발한 바울의 논지는, 그것과 대비되는 복이라는 개념으로 옮겨간다. 믿음으로 얻게 된 아브라함의 복은 그다음 부분에서 ‘약속’으로 변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아브라함의 복은 ‘성령의 약속’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도 주셨던 약속과 동일한 것이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약속이자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율법 아래에 있을 때, 우리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율법의 정죄를 받음으로 우리는 현재, 그리고 미래 저주의 대상으로 살 수밖에 없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 대신 저주의 대상이 되어 주신 그리스도를 믿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대상이 되었다.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자.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저주아래에 있던 내가 저주를 피하는 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 대신 저주를 감당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아브라함의 복은 성령의 약속이다.
-나는 율법아래 있을때의 저주가 끊어지고 그리스도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약속의 대상이 되었다…..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