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한 글 (라이언 맥그로) 나눕니다. 귀한 성경 공부 시간 되길 바랍니다.
죄의 범위와 전적 부패 교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울은 구약의 여러 본문을 결합해서 우리 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로마서 3:10-18)
바로 이것이 허물과 죄로 “죽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다(엡 2:1). 모든 죄는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는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7).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는 것도 비극이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또 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알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비극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단지 죄 가운데서 죽은 채로 태어난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싫어하고 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성경은 모든 인류가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과 함께 죽었다고 가르친다(롬 5:12, 15, 19; 고전 15:22). 이것이 바로 교회가 원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진리를 이해하려면 ‘원죄’(original sin)가 무슨 뜻인지, 또 원죄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는 모든 실제로 짓는 죄(actual sins, 자범죄)에 이르게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24-26을 사용하여 나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죄와 원죄가 무엇인지 바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타락의 본질과 깊이, 범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는 죄에 대한 치유의 영광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란 무엇인가?
문: 죄는 무엇인가?
답: 죄는 이성을 가진 피조물에게 법으로 주신 하나님의 법 가운데 그 어느 것이라도 위반하는 것, 또는 그 법에 대한 순종의 결여를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24)
원죄를 고려하기 전에 죄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죄는 “망가짐”(brokenness) 또는 “잘못된 선택”을 의미한다. 이런 해석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본성 자체가 아니라 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죄는 곧 불법”(요일 3:4)이라고 썼다. 우리는 “망가짐”이나 “잘못된 선택”은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지만,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돌이나 나무, 짐승이 아니다. 바로 사람과 천사다.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 소극적으로는, 죄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의 결여”이다. [정통장로교(OPC)] 제일 교리문답(First Catechism)은 “순응의 결여”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상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해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참 하나님의 예배자와 종이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신뢰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지 않고서는, 죄의 정의상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은 다 죄이다.
적극적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벗어남으로써 위반한다. 죄인인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적극적으로 넘는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시는데도, 우리는 모든 종교 사상은 다 평등하다는 다원주의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하시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저주하고, 우리 마음에 분노와 원한을 품는다(마 5:21-22, 약 3:9).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데(엡 6:1), 우리는 부모에게 불순종함으로 죄의 저주를 드러낸다(롬 1:30).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적용된다. 하나님이 없다면, 죄는 증발하여 없어지고 만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크고 선하신 만큼 죄는 크고 악하다(시 119:68).
원죄란 무엇인가?
문: 사람이 빠지게 된 죄의 상태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답: 사람이 빠지게 된 이와 같은 죄의 상태는 아담이 처음으로 지은 죄의 죄책, 그가 지음 받았을 때 가졌던 의의 결여, 그리고 그의 본성의 타락이며, 이로 인해 그는 영적으로 선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반대하며, 모든 악에 완전히 그리고 끊임없이 기울어져 있다. 이를 일러 원죄라고 부르며, 이 죄를 따라 모든 실제적인 범죄가 나온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25)
죄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이 “아담이 처음으로 지은 죄의 죄책”(the guilt of Adam’s first sin)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원죄의 일부이다. 아담은 신학자들이 이름 붙인 행위 언약 안에서 인류를 대표한다. 여기에서 이 개념을 탐구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은혜 언약 안에서 그의 백성을 대표하신 것처럼, 아담은 행위 언약에서 인간을 대표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행동하신 것처럼, 아담도 우리를 대신해서 행동했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다”(롬 5:12)고 말한다.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롬 5:19절)이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전가(imputation)라는 개념이 따라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금단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고전 15:22).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the imputed righteousness of Christ)가 다름 아닌 전가된 아담의 죄책(the imputed guilt of Adam)에 대한 하나님의 구제책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전가된 의를 이해할 수 없다.
전가된 아담의 죄책만큼이나 나쁜 것은, 이것만 원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담의 죄는 또한 우리에게 죄를 지으려는 성향(disposition toward sin)도 주었다. 우리는 영적인 선을 행하려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할 능력도 없으며,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앞에서 인용한 로마서 3장은 우리가 누구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에 관한 암울한 그림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전적 부패(total depravity)라고 부르는 것의 의미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요 8:34). 예수님은 또한 기꺼이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된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덧붙여 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요 8:44). 죄는 종살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종이 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죄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롬 6:15-23). 입으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예수님이 이미 “내가 세상이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에”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셨다(요 7:7). 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우리는 그럼 어떻게 반응하는가? 분노가 불타오르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가?
사람들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또 좋은 이웃과 시민이 되는 등 “선한”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악을 향해 완전히 기울어져 점점 더 악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26번은 “원죄는 우리의 첫 부모로부터 그 후손에게 자연적 출산에 의해 전달된다. 이와 같이 그들에게서 나게 되는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인 만큼,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리이다. 우리는 이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실제로 짓는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우리 각 개인의 반역은 우리가 죄라는 단어 앞에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게 아니다. 애초에 죄인이기에 우리는 죄를 짓는다. 하나님의 율법을 읽거나 들을 때, 우리는 개인적인 죄에 대해 깊이 각성해야 하며, 그러한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인도해야 한다(행 20:21). 그리고 실제로 짓는 죄에 대한 깨달음이야말로 성령께서 우리를 책망하실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상태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창문이다.
결론
우리는 원죄와 실제로 짓는 죄 모두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성령은 죄의 권세와 지배를 깨뜨리심으로 우리의 본성 속에 내재한 부패를 제거하신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함으로 아담으로 인한 죄의 전가를 제거하신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으로 아버지와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은 회개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법에 일치시킴으로써 우리 삶에서 실질적인 죄를 제거한다. 원죄를 물려받는 데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로지 출생뿐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거듭남이다. 우리 죄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는 이해하고, 인식하고, 느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