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브리서는 구속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한분으로 적나라하게 선포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이시며, 또한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며, 하나님의 임재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말씀으로 만물의 질서를 붙잡고 계실 뿐더러,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요, 말씀이요, 구세주이십니다.
3. 우리의 현실의 삶이 절대로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중요합니다. 가장 건실한 인간적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시작이 어떠했으며, 왜 구원이 필요하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를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의.식.주’의 문제가 인간의 전부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된,난,든’ 사람의 모습 또한 인간의 정체성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만물의 주관자를 인정하며, 그의 질서를 찾는 것- 왜냐하면 그의 질서 안에 인간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이 가장 큰 인간의 복일 것입니다.
4. 구원이라는 질서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실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진리로 받아들이길 축복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구원에 몰입할 수 있으며, 강력하고 타락한 죄악의 물살에 수몰되지 않을 것입니다.
1. 히브리서는 구속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한분으로 적나라하게 선포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이시며, 또한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며, 하나님의 임재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말씀으로 만물의 질서를 붙잡고 계실 뿐더러,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요, 말씀이요, 구세주이십니다.
3. 우리의 현실의 삶이 절대로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중요합니다. 가장 건실한 인간적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시작이 어떠했으며, 왜 구원이 필요하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를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의.식.주’의 문제가 인간의 전부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된,난,든’ 사람의 모습 또한 인간의 정체성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만물의 주관자를 인정하며, 그의 질서를 찾는 것- 왜냐하면 그의 질서 안에 인간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이 가장 큰 인간의 복일 것입니다.
4. 구원이라는 질서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실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진리로 받아들이길 축복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구원에 몰입할 수 있으며, 강력하고 타락한 죄악의 물살에 수몰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