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읽기에 관한 글 (테리 존슨) 나눕니다. 

 

나는 1960-70년대 전형적인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랐다. 그 교회는 성경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며, 남부 캘리포니아의 여러 교회와 농장이 풍부한 캘리포니아 중부 계곡과 교단적으로 연결된 교회였다. 이 회중은 처음에 황량한 지대와 대공황의 고난을 피해 서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우리 교회는 우리와 유사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좋은 교회, 복음주의 교회, 신실한 교회였다.

그러나 나는 설교 본문이 된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교회 예배 중에 성경 낭독을 들은 기억이 없다.

복음에 대한 소홀함

이웃 교회들의 이러한 모습은 10대와 20대 초반에 내가 한 번쯤 방문했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모든 대형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그 지역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교회 예배에서 많은 분량의 성경 읽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오늘날 전형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특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비되는 성공회 교회의 성경읽기

나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성공회신학대학 Trinity College에서 2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예전적 교회나 비예전적 교회, 진보 교회나 보수 교회 등 성공회에 속한 수많은 지역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다. 그 교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바로 기도서와 연간 일정표에 따른 성경 읽기였다. 구약, 신약의 서신, 복음서, 시편 등 모든 성경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성경읽기가 풍요롭고 계속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점이 있었다.

대체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공적 예배에서 많은 분량의 성경을 읽지 않는다. 성공회 신자 중 일부는 자유주의적 회의론자이며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왜 복음주의 교회는 많은 분량의 성경 읽기를 하지 않을까?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배 시간에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고 아마도 광고나 가벼운 대화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설교 본문 외에는 성경 읽기가 생략되어 있다. 왜일까?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안에서 가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적 예배에 많은 분량의 성경을 읽는 것은 매우 지루한 일이며, 지루하다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성경을 믿고 무오성을 옹호하는 복음주의 교회는 단순한 성경 읽기가 공적 예배에서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 자체의 증언

나는 ‘Worshiping with Calvin’에서 J. C. 라일(J. C. Ryle, 1816-1900)을 포함하여 이 단순한 공적 성경 읽기로 변화된 사람들의 예를 제시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에게 성경 읽기를 통해 변화된 것에 대한 이야기식 간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에 이르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령한 젖으로 자라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은혜의 말씀이 우리를 세워 영원한 기업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열매를 맺으며 자라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며,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언한다(벧전 1:23-25; 롬 10:17; 벧전 2:2; 요 17:17; 행 20:32; 골 1:6; 히 4:12; 롬 1:16; 참조 엡 6:1, 살전 2:13, 딤후 3:15, 렘 23:29, 사 55:11, 살전 1:5, 약 1:21). 이 외에도 성경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의 전환점

나에게 전환점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1977년 가을 밤에 있었다. 그 때 나는 트리니티 학생들 몇 명과 함께 브리스톨 다운스를 가로질러 보수적인 성공회 교회인 St. Mary’s Redcliff Church로 걸어갔다. 예배 중간쯤에 한 남자 성도가 일어나 구약 성경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낭독했다. 그는 그 말씀을 천천히, 주의 깊게, 그리고 강조하여 읽었다. 효과는 강력했다. 그리고, 다이나믹했다.

그러자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의문이 생겼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왜 확장된 거룩한 독서(역사적 개혁주의 실천)를 지속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성경 읽기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의 모든 요소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잘 읽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읽는 사람은 이해와 뉘앙스를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성경 본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회중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구차한 변명이다.

우리가 성경이 스스로 증거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성경 읽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XXI.3-5)와 그 자매고백서(London, Savoy)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된 예배의 필수 요소로 확인된 5개 항목 중 하나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공적 예배에 관한 지침서인 예배모범(Directory for the Public Worship of God)은 두 차례의 주일 예배에서 모두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각각 한 장씩을 읽도록 권하고 있다.

공적 예배에서 성경을 적어도 한 장씩 읽는 방식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일 것이다.  

Similar Posts

  • 8월 8일 목요일

    에스겔 18장 19-32절 19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 9월 6일 화요일

      누가복음 22장 3절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징조를 보지 못하는 자들은 스스로 멸망의 징조가 된다. 유월절이 다가오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민중이 두려워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열두 사도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간다.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에 가서 예수님을 넘겨줄…

  • 1월 6일 수요일

      퀴즈) 다음 말씀은 성경책 어디에 있는 말씀일까요?   그리스도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해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지혜롭게 되어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현대어 번역본)   말씀은 여러가지의 능력의 효과가 있다. 가장 큰 기적이다. 첫째는 이 말씀이 사람을 구원한다. 둘째는…

  • 1월 1일 금요일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양치기 고수였다. 초목에서의 양들에게 목자란 어떠한 인도자며 보호자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양들을 보호하고 감찰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수고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다윗은 삶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목자라 부르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셔서, 당신의 소유로 복 내려 주셨다. 우리는…

  • 6월 21일 수요일 (신26 시117,118 사53 마1)

    신 26 장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 8월 13일 목요일 (시편 21-25편)

      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21:1)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이 늘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그 승리의 원인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일이 잘 되었을 때, 그냥 잘 되어서 안도하고 기분이 좋고…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