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장 29-34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미래의 결말을 아는 자는 결실의 삶을 산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 수 있다. 싹이 나는 것은 징조이며, 여름이 오는 것은 결말이다. 주님께선 앞선 본문에서 마지막 때의 징조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징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신다. 그것이 이 땅의 결말이다. 본문의 ‘자연히 아나니(30)’는  ‘스스로 본다’라는 뜻이다.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오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의 징조를 보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졌음을 배우지 않았어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징조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졌음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34).” 주님께선 징조를 보고 결말을 아는 사람들을 향해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신다. 자기 주도적인 경계다. 스스로 조심하기 위해 선행되는 것은 결말을 아는 지혜다. 결말을 안다면, 결말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말을 모르는 자들과 같이 그날을 덫으로 만나게 된다. 결말을 모르는 자들은 지금에 충실하다. 하루의 쾌락에 집중하느라 방탕하다. 세상의 유혹에 취한다. 그리고 오늘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다. 그러므로 어떤 징조도 읽지 못한다. 그러니 마지막 날이 이들에겐 덫이다. 

성도는 징조를 볼 수 있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어둠 속에 거하면 어두운 줄 모르듯, 밝은 곳에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야 어둠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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