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찬양에 관한 귀한 글 (밥 카우플린) 나눕니다. 

 

시편 낭독이 끝날 때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 개의 악기가 폭발한다. 류트, 하프, 탬버린, 현악기 및 파이프는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인다. 오늘날에는 피아노, 일렉트릭 및 어쿠스틱 기타, 금속악기, 현악기, 그리고 신디사이저, 오르간 및 여러 종류의 타악기가 사용된다. 이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가치 그리고 그분의 역사하심에 반응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많은 악기가 예배 시간에 쓰이는 것을 보는 사람 중에서 어쩌면 더 많은 악기를 쓸수록 더 잘 예배드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교회가 다 이렇게 많은 악기와 연주자를 동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상당수의 교회가 단지 피아노 또는 기타 하나로만 예배를 드리고 있고, 하물며 그것조차 없는 교회도 많다. 

그러나 교인 숫자와 관계없이 교회라면 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악기가 있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그 악기는 매 주일 아침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악기이기도 하다. 바로 교인들의 목소리이다. 

이 사실이 예배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다른 악기들의 가치 있는 기여를 허사로 만든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기를 단지 예배에 유용한 것으로 보아야지, 예배에 필수적인 것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악기는 단지 우리의 목소리를 보완하고 돕기 위한 것이지, 우리의 목소리를 대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자

수많은 악기가 나열된 시편 150 편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은 악기를 사용하는 시편보다 일곱 배나 더 많다. 물론 이 사실 하나만을 놓고 결론이 났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 점이 우리에게 바른 찬양과 관련해서 주는 시사점은 결코 적지 않다. 

시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편을 통해 찬양할 때 그 뒤를 받쳐주는 악기를 하나님이 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가사(lyrics)를 주었을 뿐이다. 물론 많은 시편에는 악기가 언급되어 있고, 또 그런 악기를 연주하라는 명령도 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 것 보다 어떤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신약이 플루트, 트럼펫 그리고 하프를 언급하고 있지만(마 11:17; 고전 14:7–8; 살전 4:16; 계 5:8; 14:2; 15:2),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였을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찬양이라는 점을 신약은 분명히 하고 있다(마 26:30; 막 14:26; 행 16:25; 고전 14:15, 26; 엡 5:19; 골 3:16; 약 5:13). 악기만 가지고 “가르치고 훈계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구성원을 위해서

비록 당신이 교회 찬양팀에 속한 정식 멤버가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네 가지 방법을 통해서 당신은 찬양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준비하라. 좋은 연주자는 주일 예배를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또 연습한다. 그러나 단지 교인 중 한 사람으로서 당신이 굳이 교회에 가면서 목을 풀 필요는 없지만, 당신은 그 대신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주일 예배 시간에 찬양이 당신의 마음을 열기 전에 토요일 밤 또는 그 전부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부어주신 풍성한 은혜를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 인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그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게 하셨고, 그 결과 우리는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받았고 또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모든 것은 100% 이뤄질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여하라. 뻔한 말이지만 모든 교인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다 찬양할 때 그들의 찬양 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릴 것이다. 찬양팀에서 악기를 담당하는 누군가가 악기를 아예 연주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다면 아주 이상할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교인이 찬양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시 40:9).

주변을 돌아보라. 찬양을 하는 중에 주변 교인들과 간간히 눈을 맞추도록 하라. 나도 당신과 함께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고,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기쁜지를 보여주도록 하라.

받으라. 나는 종종 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에 찬양하기를 잠시 멈추고 대신 다른 이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진리가 내 영혼을 씻기도록 한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실 때, 우리는 “서로 화답하고” 또 “피차 가르치며 권면”해야 한다(엡 5:19; 골 3:16). 이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서로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한 말씀과(고전 12:7; 14:5, 12, 26)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다른 교인이 내 주위에서 찬양하는 것을 듣는 것은 은혜와 성숙을 가져다주는 좋은 방법이다. 

시끄러운 신디사이저 소리와 혼란스러운 기타 화음 때문에 심지어 찬양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오늘날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런 일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단지 음악적인 경험을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격려하라. 찬양 사역자와 멤버들을 칭찬하라. 그들이 선택한 특정 찬양에 대해서 감사하라. 하나님이 그들이 선택한 찬양을 사용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바로 바라볼 수 있었고 또 믿음이 더 강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하라. 주변에서 큰 소리로, 담대하게, 기쁘게, 그리고 신실하게 찬양하는 사람들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표현하라. 특히 슬픔과 시련 속에서 믿음, 신뢰, 기쁨의 찬양을 부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격려하라.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해서 

교인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한 악기로 삼을 때, 우리에게는 다음 다섯 가지의 유익이 있다. 

첫 번째로 교인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악기가 될 때 우리는 에베소서 5장 19절과 골로새서 3장 16절의 명령을 새롭게 상기하게 된다. 단지 하나님을 향해서만 찬양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서로를 바라보며 찬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보다 더 확실하게 내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로 인해 각 사람이 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두 번째로 교인들의 전체 목소리가 내는 찬양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것은 예배가 공연으로 전락할 위험을 줄여주고, 그에 따라 모든 교인이 참여하는 진정한 예배가 됨을 의미한다.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에게 받는 감동은 줄어들고, 내가 참여함으로 느끼는 감동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찬양 팀은 단지 함께 예배하는 큰 지체의 일부이지 결코 분리된 파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를 인도하는 분은 오로지 대 제사장되신 예수님뿐이고, 오로지 그분만이 우리가 아버지께 드리는 모든 찬양의 제사가 완전하도록 할 수 있다(벧전 2:5).

세 번째로 교인 전체의 역할을 중요시함으로 우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수 있다. 통상 “오늘 예배 어땠어?”라는 질문이 함축하는 바는 앞에서 찬양을 인도했던 사람들이 잘했는지의 여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 “예배”가 단지 주일에 모여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앞에 있는 몇 명의 찬양 팀이 하는 게 아니라, 교인 전체가 다 함께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교인 전체가 보여주는 열정, 참석(participation), 자발적 참여(engagement) 그리고 표현에 달려있다.

네 번째로 교인 전체의 목소리에 우선 순위를 둠으로 우리는 앞에서 환상적인 소리를 내는 음악가에게 덜 의존하게 되고, 반대로 믿음으로 넘치는 우리의 내면을 더 의존하게 된다. 매주 훌륭한 악기를 동원해서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교회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한번 솔직해지자. 교회에서 찬양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음악가는 잘해야 평균 수준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실력이 늘기를 바라지만, 사실 그들은 그렇게 탁월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결코 주님의 영광을 향해 육신과 마음의 눈을 열고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각자가 내는 목소리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교인을 가장 중요한 악기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하나 됨을 더 잘 표현하게 된다. 교인들과 찬양팀 사이를 가르는 줄도, 또 목사와 교인을 가르는 줄도 없다. 우리 모두는 다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의 피를 통해 하나가 되었으며 또한 성령 안에서 함께 묶인 바 되었다.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5-6).

어린 양의 영광을 노래하는, 영원토록 계속될 그 찬양이 다른 악기가 아닌 교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점점 더 크게 울려퍼지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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