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관한 귀한 글 (매튜 스미털스트) 나눕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다다르는 길은 오로지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계시 또는 추측,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거나 아니면 우리가 추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한 권의 책을 통해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기 위해, 달리 말하면 우리와 친구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포기했다.” 성경은 이미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기 위한 만능 패스이다.

사실상 성경은 그 누구나 인정하듯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다. 성경에 찬성하든지 아니면 반대하든지 간에 성경에 관한 글들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쓰여지고 있다.

‘성경을 펴기 전에’(Before You Open Your Bible)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성경에 대해서 스스로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을까? 여기 여덟 가지가 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이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 이건 무슨 의미일까? 영감은 하나님과 성경 저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성경 저자들이 그렇다고 오늘날 흔히 쓰는 식의 영감을 받은 건 아니다. 바울이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 영감을 받아 갈라디아서를 쓴 게 아니다. 또한 바울이 어떤 최면 비슷한 상태(catatonic state)에서 친구에게 몇 단어를 암송하고는 곧 양피지를 집어들고 “하나님이 뭘 썼는지 보자!”라고 말한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영감받았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성경 전체는 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성경을 흔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라면, 모세, 다윗 그리고 바울과 요한 같은 사람은 다 뭐란 말인가? 성경을 쓴 저자는 그들이 아니던가? 맞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쓰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다른 말로 하면, 인간 저자들이 글을 쓸 때 하나님이 거기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확실하게 개입하셨다는 것이다. 한 글자를 더 쓰지 않도록 하셨고, 한 글자도 덜 쓰도록 그냥 두시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이런 저자가 단지 수동적인 로봇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개성 또는 지성을 무시하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들 또한 쓰면서 생각하고 느꼈다. 하나님은 그들의 독특한 개성과 교육 그리고 배경과 경험을 사용해서 영감을 주셨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쓰도록 하셨다.

2. 성경은 진리이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진리의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자신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성경 속에 있는 “영적인” 개념들을 다 진리로 여기지만 다른 내용들, 예를 들어 역사적 또는 지리적 세부 사항 등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결코 “진실하게 말하는 주제의 종류에 대해서 그 어떤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부분에 대해 성경이 정말로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완벽하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부분도 진짜 맞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성경을 보면 우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성에 대한 많은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예, 시 12:6; 19:7–9; 119:160; 잠 30:5–6; 요 10:35; 17:17). 모든 말씀은 흠이 없고(시 12:6; 잠 30:5), 영원하고(시 119:89; 사 40:8; 마 24:35), 깰 수 없고(요 10:35), 완전함에 경계가 없고(시 119:96), 그리고 완벽하게 믿을 수 있다고 묘사되고 있다(벧후 1:19).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이 사실을 확인하셨다. “말씀은 진리이다”(요 17:17). 성경의 진리됨은 워낙 포괄적으로 당연시되고 있기에 어떤 주장을 하는 전체 내용이 한 단어를 어떻게 불렀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경우도 있고(마 22:45), 또 특정 명사의 숫자에 달려있는 경우도 있으며(갈 3:16), 심지어 동사의 시제에 달려있는 경우도(마 22:32)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제대로만 해석된다면 결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성경이 하는 말은 모두 하나님 말씀이다.

3. 성경은 권위가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한 이 우주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그의 사랑의 권위는 그의 말씀을 통해서 드러났다. 하나님은 자신과 말씀을 아예 하나로 간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믿지 않거나 거역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거역하는 것과 같다.

물론 성경이 유일한 권위는 아니다. 부모(엡 6:1–2), 목사(히 13:17; 벧전 5:5), 그리고 정부 관리(롬 13:1–7; 벧전 2:13–14)와 같은 다른 권위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성경은 바로 대법원이다. 이것은 모든 신념, 가치, 의견, 진술 및 설교의 정확성은 오로지 다음 질문에 의해 해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모든 부분, 모든 요소는 결코 침범되어서는 안 되는 권위”라고 인정하셨다.

왕은 명령하지 충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J. C. 라일(J. C. Ryle)은 이렇게 말했다. “성경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성경을 읽는 자는 더 행복하다. 가장 행복한 자는 단지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성경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라일의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사는 문화 및 사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진정한 생명과 자유를 찾을 수 있다.

4. 성경은 명확하다

성경은 고대 문서이다. 그래서 생소할 수도 있다. 어떤 부분들은 혼란스럽기도 하다(벧후 3:16). 그럼에도 성경은 충분히 명확하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하나님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신 6:6-7).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성경은 어린아이가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얕지만 또 동시에 코끼리가 수영을 해야 할 정도로 깊다. 이 말은 참으로 심오할 정도로 옳다.

때때로 성경은 복잡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실 그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애초에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성경과 관련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성경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때문이 아니라 이해하는 부분 때문이다.” 즉, 성경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어렵다는 것이다.

5. 성경은 충분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온전히 믿고, 완벽하게 순종하고 또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말씀을 온전히 포함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1:3). 마찬가지로 바울도 성경은 너무도 완벽하기 때문에 “모든 선한 일에 완벽하게 충분하다”라고 했다. “모든” 일에, “완벽하게” 충분하지 결코 “일부분”과 “대부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딤후 3:16). 성경 이상으로 더 충분할 수는 없다.

성경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알려준다. 성경이 알려주는 진리는 100%는 아니다. 그러나 충분하다(신 29:29; 잠 25:2). 성경에는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진리(딤후 3:15; 약 1:18, 21; 벧전 1:23)와 믿음 안에서 하나님에 순종하는데 필요한 모든 진리(딤후 3:16; 벧후 1:3–4)가 다 담겨있다. 그렇기에 성경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빼는 것에 대한 무서운 경고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신 4:2, 12:32; 잠 30:5–6).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적 기독교의 타락은 언제나 성경의 충분성이라는 원칙에 대한 양보로부터 시작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확립한 기독교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성경에 뭔가를 추가하거나 제거함으로 시작된다. 모든 이탈은 성경에 뭔가를 플러스 하거나 또는 마이너스하는 것이다.”

6. 성경은 능력이 있다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다. 사람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하고(렘 23:29), 또 삶을 바꾼다(요 17:17; 참고. 롬 1:16; 살전 1:4–5).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성경에 능력이 있다는 말은 달리 하면 성경이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성령님은 성경을 사용해서 당신의 계획을 실현해 가신다(사 55:10-11).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있는 팔이 일하실 때 쓰시는 도구이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말씀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당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쓰여진 게 아니다. 성경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쓰여졌다.”

7. 성경의 주인공은 그리스도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경은 윤리적 원칙, 도덕적 사례 또는 추상적인 인생 교훈을 모아놓은 모음집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의 소름돋는 스토리이다.

그 스토리는 당신과 나에 대한 게 아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부활한 구세주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서 나타났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나중에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4–45).

부활하신 이후에만 이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니다.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중에도 예수님은 소위 당시 “성경 전문가들”에게 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39–40, 46).

그렇기에 이 말은 옳다. 구약에서 “예수님은 가려졌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드러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구조는 오로지 하나님의 구속자 아들을 기다리며 비추다가 때가 되어 궁극적으로 드러내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 성경의 드라마 속에 숨은 가장 놀라운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성경의 주인공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8. 성경은 소중하다

성경은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소중하다. 우리의 음식(렘 15:16), 생명(신 32:46–47), 위로(시 119:50), 힘(시 119:28), 인도(시 119:105), 열망(시 119:20), 소망(시 130:5), 사랑(시 119:97), 기쁨(요 15:11), 그리고 보물(시 119:72)이다.

레위기와 역대기 그리고 오바댜조차 당신을 격려하기 위해서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무엇이든지. 바울은 구약 전체가 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쓰였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을 소망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보다 성경을 더 소중하게 하는 ‘성경 우상주의'(bibliolatry)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은 사실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시 56:4; 119:48). 그렇기에 성경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의 믿음을 눈으로 목도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귀로 듣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하나님의 성경을 하나님의 얼굴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서 말씀 안에서 우리가 녹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녹는 것이다.” 또 어떤 설교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이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렇기에 나는 성경의 음성을 들을 때면 언제나 경외감을 느낀다.”

성경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무한 보물 상자이다. 성경의 주장은 이것이다. 성경은 영감 받은 말씀이며 진실 되고 권위 있으며, 명확하고, 충분하고, 능력 있고,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또 소중하다. 하나님께서 성경 스스로가 성경을 증거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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