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 목사님의 ‘구원의 확신’에 관한 글을 나눕니다. 

 

구원의 확신은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고민스러운 문제다. 여기서 고민하게 되는 점은 기독교가 가르치는 객관적 사실들의 진실 여부가 아니다(하나님이 존재하시는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는지,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셨는지, 그리스도가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하시는지 등). 이 객관적 사실들은 우리의 신앙에서 전적으로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구원의 확신이라는 문제에 있어 우리를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은 내가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주관적 확신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이는 ‘내가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으로 압축된다. 이 문제가 우리를 고뇌하게 만드는 이유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이들이 자신은 구원받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따라서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 따라온다. 나는 진정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의 믿음은 진짜인가? 나는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는 믿음에 대한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물론, 그들은 선의로 그럴 수 있다). 즉, 구원받는 믿음이란 어떤 진리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결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잘못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삶의 변화를 통하여 믿음의 참됨이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 한다. 그들은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 데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특정한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들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믿음에 대해서조차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같은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 진리를 잃게 한다. 또한 가장 최악의 경우에는, 구원의 확신을 갖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때때로 구원의 확신을 줄 것이다.

새로운 빛, 새로운 안식

우리는 기적적이고 심오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의 속성을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변화된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문제와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은 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라는 객관적 보증과, 바로 그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주관적 보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객관적 보증은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히 10:14)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주관적 보증은 ‘성화되는 과정’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는 믿음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구원받는 믿음의 두가지 정의를 깨달아야 한다. 첫째로, 믿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또는 아름다움)을 보는 ‘영적인 시각’이다. 즉, 죄인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의 역사를 듣거나 읽게 될 때, 이 복음은 여러분의 마음에 그 자체로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기 이전에도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이런 일이 있다. 나는 이 깨달음을 고린도후서 4장 4 절에서 얻었다. 바울은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했다. 믿음이 참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분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빛’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심으로써 일어난다.

믿음은 이 영광의 복음 안에서 ‘보장된 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장된 안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보장되지 않은 안식‘을 가진 사람들(구원받지 않았음에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빛나는 영광을 보기 위해 그 분께로 나아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영원한 벌에서 구원받기 위해 믿음을 선택할 뿐, 그리스도를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장된 안식을 받을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빛을 보는’ 자들에게는 안식이 보장된다.

빛이 비추는 곳

우리는 복음의 빛이 드러나는 십자가와 또한 그분의 지속적으로 행하시는 사역을 계속 바라봐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엡 1:18). 더 나아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선물이다. 이것이 우리 안에 풍성히 임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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