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결국에 관한 귀한 글 (존 블룸) 나눕니다. 좋은 공부 자료입니다.
영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영은 몸과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영과 구분되는 혼이라는 게 있을까? 몸과 혼과 영은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단위(unit)일까? 또 죽으면 이 세 가지 차원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그리고 부활하면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기독교인은 지난 역사 내내 이 문제를 놓고 씨름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본문에 따라서 영과 혼 그리고 몸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특히 서구 기독교의 경우 플라톤이 우리의 사고에 끼친 막대한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뇌과학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영향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자 대부분은 역사를 통틀어서 아타나시우스 신경(Athanasian Creed)의 표현대로,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성적인 영과 육체’로 이뤄져 있다는 데에 성경이 동의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크게 두 개의 차원, 즉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으로 인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두 차원은 서로 나눠지도록 고안되지 않았다. 그러나 죄와 그 댓가 때문에(롬 6:23) 비극적인 비정상 상태가 발생했는데, 바로 죽음으로 인해 이 둘이 나눠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 둘의 통합이고, 기독교인이라면 몸이 죽고 천국에서 영만 따로 존재하는, 그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엄청난 분리
하나님은 인간을 영을 가진 몸으로 창조했고, 따라서 영과 몸이라는 이 두 차원은 완벽한 조화 속에서 서로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타락이 찾아왔고, 그 결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그리고 죽을 때 인간의 영이 몸으로부터 분리된다고 성경은 묘사한다.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런 분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신학자 중에는 인간은 분리될 수 없다고, 인간의 어떤 부분도 몸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성경이 말하는 영과 혼이라는 용어는 단지 인간 자신, 또는 인간의 삶에 대한 다른 표현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일원론자(Monists)이다. 일원론자는 인간이 죽으면 일종의 영수면(soul sleep) 상태에서 부활할 때를 기다린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 요한복음 11장 11절과 고린도전서15장 20절 외에 다양한 구절을 제시한다.
그러나 대다수 기독교인이 일원론자가 아닌 데에는 이유가 있다. 너무도 많은 구절이 죽음이 우리의 몸을 가져간 이후에도 우리의 영(또는 혼)은 살아남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창 35:18; 시 31:5; 눅 23:43, 46; 행 7:59; 빌 1:23–24; 고후 5:8; 살전 4:14; 히 12:23; 계 6:9; 20:4). 그러므로 ‘잠’은 영이 아니라 죽은 몸에 생기는 일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중간 상태
여기에 관해서 가장 명확한 성경 말씀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다(눅 16:19-31). 이 비유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다 죽는다. 그들의 영은 몸에서 떨어져서 ‘하데스’로 간다. 하데스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나사로는 아브라함이 있는 쪽에 머물고 거기서 건널 수 없는 반대쪽에서는 부자가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예수님이 비유를 위해 만든 픽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현실적인 픽션을 사용한다. 만일 이 비유가 어떤 식으로든 죽음 이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반영하지 않는다면(그리스도 자신이 인간의 영혼이 되어 하데스로 가서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면전으로 데리고 갈 때까지), 이것은 실로 이상한 이야기가 되고 또한 예수님의 다른 비유와 달리 오해의 소지가 많게 된다.
신학자들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영이 간 곳(둘 사이에 커다란 단절이 존재하는 곳, 눅 16:26)을 ‘중간 상태’라고 부른다. 거기서 죽은 자의 영은 부활과 마지막 심판을 기다린다(요 5:28-29). 죄 중에서 죽은 자(요 8:24)에게 그 상태는 말 그대로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는 곳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죽은 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우리가 ‘천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한 말씀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그렇기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고후 5:8)이 타락으로 인해 “사망의 몸”(롬 7:24)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 1:23).
비록 임시라고 해도 이 낙원은 헛된 세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결코 이곳을 최고의 장소라고 말하지 않는다. 비록 성경이 아주 명확하게 말을 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건 영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후 5:4).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황홀하겠지만, 그럼에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1)처럼 몸을 입기 전까지 우리는 미완성의 단계다.
영적인 몸
기독교는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그 무엇보다 부활의 종교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물론 핵심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우리의 죄에 대한 그의 죽음이 가진 효과적인 대속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전 15:17-19), 궁극적인 미래의 희망을 가리킨다. 바로 부활이다(고전 15:20).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 피조물은 지금의 ‘허무함’과 ‘부패의 속박’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심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롬 8:19-21).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이 ‘몸의 구원’을 경험할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될 것인데, 바로 새로운 몸을 의미한다(롬 8:23).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복스러운 소망”(딛 2:13), 구름 안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모임으로 시작하는(살전 4:15-17)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날 것이다. 신약 전체가 부활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에서 몸도 없이 모여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애초에 창조를 보고 “좋다”(창 1:31)라고 하셨다. 그러나 죄에 의한 타락 이후로 하나님은 이제 “모든 것을 새롭게”(계 21:5) 만들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이 새 창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정화된 영과 부활한 새 몸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위대한 재결합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뤄진 왕국을 주셨고(사 65:17; 벧후 3:13), 예수님 안에서 양자된 모든 이는(엡 1:5) 이제 그와 함께 다스리며 또한 그의 부활에 동참하게 된다(계 20:6). 우리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무찌르는 최후의 적은 죽음이다(고전 15:26).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1–55).
저주받은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비물질적인 영과 물질적인 몸의 엄청난 분리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할 때 우리의 영과 몸은 다시 엄청난 결합을 하게 될 것이고, 영광스럽게 된 몸은 예수님의 몸처럼 “결코 다시 죽지 않을 것이다”(롬 6:9).
부활해서 다시 영과 몸이 하나 된 상태에서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우리가 경험하게 될 기쁨 중의 기쁨, 새로운 삶의 빛, 그리고 새 땅의 하늘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