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통치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기도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이다. 사실상 주기도문 중 간구의 기도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가 많다. 성경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나와 있지만, 도리어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해 주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는 이가 많다. 여기서 ‘나라’는 영어로는 ‘nation’이다. 이런 번역 때문에 ‘나라’를 현대적인 국가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원어는 ‘kingdom’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실 것(dominate)을 구하는 기도이다. 이 간구를 풀어 쓰면,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이 땅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통치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부 반응이 생긴다. 특히 우리가 근·현대에서 경험했던 통치가 백성을 섬기는 통치가 아니라 지배하는 통치였으므로 하나님의 ‘통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 속 대부분의 통치 행위는 백성의 자유를 뺏고, 백성을 통치자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은혜의 통치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통치 받는 사람을 가장 자유로운 존재, 가장 성숙한 존재로 만들며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통치이다. 이 기도문은 이런 자비로운 통치, 은혜의 통치, 하나님의 헤세드가 있는 통치, 인격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이어서 기도하는 내용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개별적 사안에 대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주기도문 앞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하늘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하늘’은 황금 보석으로 꾸민 사후의 어떤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거부당하지 않고 온전히 실현된 곳’이다. 하나님의 뜻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하늘인데, 이 땅도 그런 하늘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기도에서 하늘과 땅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땅은 하나님의 뜻이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고 있는 곳이다. 땅에는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존재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사탄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두 인격적 존재의 배척이 있는 바로 이 땅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하늘처럼 되기를 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가 임하소서”와 “뜻이 이루어지이다”는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내용이 마태복음에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누가복음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로만 나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마태복음은 “나라가 임하소서”를 두 개의 진술로, 누가복음은 하나로 표현했는데, 마태복음이 누가복음보다 훨씬 더 조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도는 산문이라기보다는 운문에, 글보다는 노래에 가깝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일종의 시와 노래라고 볼 수 있는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도 일종의 운율이 담겨 있다. 하늘에 관한 기도 세 가지, 인간에 관한 기도 세 가지가 나오면서 하나의 운율을 만든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전반부 세 가지 기도의 핵심은 “나라가 임하소서” 곧 “하나님이 다스려주소서”라는 것이다.